“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게 하소서.”
주님의 기도를 바칠 때,
그리고 아버지의 뜻이 땅에서도 이루어지라는 기도를 바칠 때
저는 종종 여러 가지 형태로 바꿔 기도하곤 합니다.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제 안에서도 이루어지소서.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저희 공동체 안에서도 이루어지소서.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남녘에서도 북녘에서도 이루어지소서.
헌데 아버지의 뜻이 제 안에서도 이루어지길 바라는 것은 이런 뜻입니다.
순종의 뜻으로서 제 뜻대로 마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시라는
겟세마니에서 주님께서 하신 그 기도의 뜻입니다.
그런데 더 깊숙이 파고들어가 분석을 해보면 이런 뜻이 더 있습니다.
저의 의식적인 의지는 아버지의 뜻대로 해야 된다고 합니다.
그러나 저의 무의식적 의지는 제 뜻대로 하려고 합니다.
이는 비단 저뿐이 아니겠지요.
마음은 간절하나 몸이 따르지 않는 것처럼
하느님 뜻대로 하고자 하나 그렇게 하기 싫은 내가 꼭 옆에 있지요.
그래서 하느님 뜻대로 하게 해달라고 우리는 기도하는 것입니다.
능히 하느님의 뜻에 나의 뜻을 꺾을 수 있다면 기도하지 않지요.
내 뜻만으로 그리고 내 힘만으로 안 되기에 은총이 필요하고,
은총의 힘으로 나의 뜻을 꺾고 아버지의 뜻을 따르게 됩니다.
두 번째로 우리 공동체 안에서 이루어지기를 기도하는 것은 이런 뜻입니다.
나도 너도 모두 아버지의 뜻을 따를 수 있게 되기를 기도하는 것이지만
이런 기본적인 뜻 외에도 내 뜻이 아니라 아버지의 뜻이
공동체 안에서 이루어지게 해달라는 뜻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기도하는 뜻이 무엇이겠습니까?
아버지의 뜻이 아니라 공동체를 내 뜻대로 끌고 가려고 하고,
아버지 친히 끌고 가시도록 하지 않고 내가 아버지의 뜻대로 끌고 가려하여
결국에는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지게 하는 것이 아니라 방해를 하고 맙니다.
아! 이런 점이 너무 어렵습니다. 제게는.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지도록 내가 뭔가를 해야 하는지,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지도록 아무 것도 하지 말아야 하는지.
어떤 때는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지소서.’하고 말로만 기도하면서
나는 아무 것도 하지 않고 있고,
어떤 때는 내가 뭔가 해야 한다고 깝죽거리다 방해나 하고 있습니다.
사실 답은 이렇습니다. 내가 죽는 것인데
누군가 희생하고, 죽어야 하는 일에는 내가 나서고,
누구나 나서고 싶어 하는 일에는 나서지 않고 죽는 겁니다.
세 번째 아버지 뜻이 온 땅 위에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것은 이런 뜻입니다.
아버지 뜻이 공동체 안에서 이루어지게 하는 데는 뭔가 내가 할 게 있지만
우리나라가, 북한이, 그리고 전 세계가 아버지 뜻대로 되게 하는 데는
내가 할 것이라고는 아무 것도 없는 것 같고 막막합니다.
그래서 아버지의 뜻이 이루지지 않을 것 같은 절망감 같은 것이 있고,
그래서 기도해봤자 소용이 있겠는가 하는 의심과 불신이 스며듭니다.
제가 북한의 회개를 위해서 그렇게 오래 기도하고 있고,
우리 위정자들과 국민들이 민족화해의 정신을 갖게 되기를 기도해왔는데
아직도 우리나라와 남북관계는 이 모양, 이 꼴이니 말입니다.
그래서 저는 기도하는 것입니다.
정말 이것은 제가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니 당신이 이루셔야 한다고.
그리고 절망이나 의심 때문에 기도도 하지 않는 제가 되지 않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