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무렵 예수님께서는 기도하시려고 산으로 나가시어,
밤을 새우며 하느님께 기도하셨다.”
“예수님께서 그들과 함께 산에서 내려가 평지에 서시니....
온 백성이 큰 무리를 이루고 있었다.”
루카복음을 마태오복음과 비교할 때
산과 평지의 구도를 명확하게 부각시킵니다.
그리고 산과 평지의 구도를 부각시키는 것은
기도하시는 주님을 부각시키기 위해서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기도를 위해서는 산 위로 오르시고,
복음 선포를 위해서는 땅/세상에로 내려오심을 대비시키기 위해서입니다.
사실 주님께서는 수시로 기도하지 않으셨겠습니까?
다시 말해서 꼭 산위에서만 기도하셨겠습니까?
오늘날 우리로 치면 화살기도를 수없이 하시고
회당이나 보이지 않는 골방에서도 기도하셨겠지요.
그러므로 오늘 복음에서 기도하러 산에 가심을 얘기함은
주님의 일상적인 기도를 소개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특별한 기도를 얘기하는 것이고
오늘날 우리로 치면 피정기도를 하셨음을 얘기한 겁니다.
주님께서는 오늘 12 사도를 뽑기 전에,
그리고 그들과 함께 대중 선교를 위한 출전을 하기 전에
아주 특별한 기도를 하십니다.
어떤 특별한 기도를 하십니까?
첫째는 식별의 기도입니다.
영적인 식별의 기도입니다.
오늘 주님의 경우는 12 사도를 아버지의 뜻에 따라 식별하는 거지만
그것을 우리에게 적용시키면 중요한 일을 앞두고
하느님의 뜻이 무엇인지 식별하고,
내가 하려는 것이 과연 하느님의 뜻에 맞는지
아니면 내가 좋아하는 것을 하려는 것인지 식별하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하느님으로부터 힘을 얻는 기도입니다.
오늘 복음을 보면 주님께서 산에서 내려오시자
온 지역에서 수많은 사람이 모여 와 주님을 만지려 하였는데
“그분에게서 힘이 나와 모든 사람을 고쳐주었기 때문”이라고 얘기합니다.
힘이란 그렇습니다.
들어가는 힘은 없고 나가기만 하면 힘이 빠져 아무 것도 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심한 경우 심리학적으로 얘기하면 무기력 증에 빠지게 되지요.
힘이 하나도 없어 아무 것도 하고 싶지 않고, 할 수도 없습니다.
우리 교회 안에서도 과거 아주 열정적으로 일하고,
여기저기 불려 다니던 유명 강사들에게서 이런 모습을 흔치않게 봤는데
이들이 먹는 것을 못 먹어서 그리 되고
기도를 하지 않아서 그리 되었겠습니까?
기도도 많이 하고 피정도 많이 하였지만
힘을 얻는 기도나 피정을 하지 않아서 그리 됐을 것입니다.
의무로 하는 기도,
강의만 듣는 피정,
이런 것으로는 하느님으로부터 힘을 얻지 못합니다.
저도 이제 하산을 해야 된다고 생각은 하는데
저 세월호 유가족들이 단식을 하는 광화문에도 달려가고,
사람들이 모여있는 다른 곳에도 달려가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아직 자꾸 멈칫멈칫 하는 것을 보면 힘을 얻는 기도가 부족한 모양입니다.
부지런히 더 오르락내리락해야겠습니다.
제가 다시 일어날수 있는 힘을 주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