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을 실천하는 사람이
내 형제요 누이요 어머니다.”(마태 12, 50)
오늘은 마리아가 자신을 봉헌하였다는 성모 자헌 축일입니다.
그런데 이 축일의 근거는 복음에 있지 않고 전승에 있습니다.
성모 마리아가 어렸을 때 그것도 어느 전승에는 세 살 때
당신 자신을 봉헌하셨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것을 믿으십니까?
저는 믿지 않고 여러분도 굳이 믿으실 필요 없습니다.
그러나 믿고 싶으신 분은 물론 믿어도 되고 믿는 것이 좋기도 합니다.
그런데 세 살 때 당신을 봉헌하셨다는 역사적인 사실은 안 믿어도 되지만
언제인지는 우리가 모르지만 분명 당신을 봉헌하셨다는 것은 믿어야 하고
그 봉헌을 우리는 본받아야 할 것입니다.
그러라고 이 축일이 있는 것이니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성모 마리아께서는 틀림없이 예수 그리스도를 잉태하시긴 전에
당신 자신을 봉헌하셨을 것입니다.
만일 그 전에 당신을 스스로 봉헌치 않으셨다면,
다시 말해서 먼저 스스로 봉헌치 않고 그래서 준비가 되어있지 않았다면
천사 가브리엘로부터 처녀의 몸으로 예수를 낳을 거라는 말을 들었을 때
머뭇거림이 없이 하느님의 말씀을 수락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제가 자주 얘기하듯 참된 순종은 준비된 순종이고,
완전하고 자유로운 순종도 준비된 순종입니다.
하느님의 말씀을 들었지만 준비가 되어있지 않기에
망설임과 숙고의 시간을 거친 다음 순종하는 것도 훌륭한 순종이지만
하느님의 말씀이라면 어떤 말씀이건 순종하겠다고 미리 자신을 준비시킨,
달리 말하면 채비된 순종이야말로 참되고 완전하고 자유로운 순종입니다.
프란치스코의 첫 번째 전기작가인 토마스 첼라노는
초기 프란치스칸 형제들의 순종에 대해 이렇게 기술합니다.
“순종을 매우 잘하는 이 기사들은
거룩한 순종보다 더 귀하게 여기는 것이 아무 것도 없었다.
순조의 명령이 떨어지기도 전에 그들은 명령을 수행할 채비를 차렸다.
그들은 명령 앞에서 좌지우지하는 법이 없었으므로
그들은 모든 방해물을 치우고 명령받은 바를 서둘러 수행했다.”
그렇습니다.
마리아도 하느님께서 어떤 말씀을 내리시건 순종하겠다고,
그 말씀대로 실천하겠다고 자신을 봉헌했기에 말씀을 잉태할 수 있었습니다.
자신을 봉헌하지 않은 사람은 채비된 순종을 할 수 없습니다.
왜냐면 봉헌이란 자신을 내어주는 것의 다른 말이기 때문이고
자신을 내어주지 않은 사람은 순종을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것이 하느님께 자신을 봉헌하는 인격적인 순종도 그러하지만
하느님께서 맡기신 일에 자신을 투신하는 사명적인 순종은 더욱 그러합니다.
하기 싫은 일이나 소임이 내게 주어졌을 때
자신을 내어주려는 자세와 준비가 되어있지 않은 사람은
즉시 그 말에 순종할 수 없습니다. 하느님의 말씀이건 장상의 말씀이건.
그리고 이렇게 자신을 봉헌함으로써 준비된 순종을 할 수 있는 사람이라야
참으로 행복한 사람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왜냐면 준비된 순종을 하는 사람은 무엇을 해도 좋기 때문에 행복한 겁니다.
저는 지금까지 이런 면에서 행복합니다.
지금까지는 비교적 봉헌의 순종을 잘 살 수 있었고,
어떤 일이나 소임이 주어져도 기쁘고 즐겁게 최선을 다해 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일이나 소임은 그럴 수 있었지만 하느님께서 몸의 고통을 주신대도,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그런 몸 상태를 주신대도 제가 잘 순종할 수 있을지.
그것은 모르겠고 이것이 사실 걱정이고 두려움입니다.
주님, 이런 제게 자비를 베푸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