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가 보고 있는 저것들이,
돌 하나도 다른 돌 위에 남아 있지 않고 다 허물어질 때가 올 것이다.”
지금 있는 것들은 무엇이나 다 무너지거나 허물어질 때가
언젠가 있을 거라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지금 한창 젊은 사람일지라도 그것은 알고 있고
나이든 사람은 더더욱 잘들 알고 있을 것입니다.
더욱이 요즘같이 그 푸르던 잎이 질 때에는 젊은이들도
모든 것이 지는 것이 자연의 이치라고 생각은 하겠지요.
그런데 문제는 젊은이들이 그 점을 생각은 하지만
그것이 얼마나 임박한 것인지 실감치 못하여 절박함이 없을 것입니다.
제가 2-30대 때, 아니 40대가 되었을 때도
우리 인간의 젊음과 아름다움이 얼마나 형편없이 무너지는지 실감치 못했고,
그래서 허물어진 육신을 지닌 어르신들을 불쌍히 여기고 돕기는 했어도
나하고는 거리가 먼 것처럼 느꼈었지요.
그러다가 저의 어머니의 육신과 정신이 허물어지는 것을 보며
그때서야 남의 일이 아니고 실감이 나기 시작하였고,
제 이빨이 빠져 이제 여덟 개까지 빠지니 더욱 실감이 나지요.
그러고 보니 실감이라는 말이 아주 재미있습니다.
실감이란 틀림없이 한자로 實感일 텐데 실제 감정의 준말이고,
실제로 그런 일이나 상황에서 느끼는 감정일 거라 생각됩니다.
실감이 안 나는 경우가 꽤 있습니다.
제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한참이 지났는데도
제 어머니가 돌아가셨다는 느낌이나 생각이 들지 않았습니다.
왜 그랬고, 왜 그럴까요?
보통의 경우 너무 뜻밖에 또는
갑자기 어떤 일이나 상황이 닥칠 때 그렇지요.
그런 생각을 한 적이 없고, 그래서 준비가 안 되어 있어서 그런 거지요.
그런데 이런 것은 ‘꿈인가 생신가?’할 때의 그런 것입니다.
너무 좋은 것도 갑자기 이루어지면 ‘꿈인가 생신가?’하고
너무 안 좋은 일에도 ‘꿈인가 생신가?’하는 것과 같은 것이지요.
그런데 다른 경우도 있습니다.
충분히 예견이 되었고, 그래서 마음 준비를 하고 있었는데도
그 일과 상황이 실제로 일어났을 때는 실감이 나지 않습니다.
왜 그럴까요?
그 일이나 상황을 예상은 했었지만 그것이 막상 실제가 되면
우리의 마음은, 특히 우리의 감정은 그것을 인정하고 싶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렇지 않겠습니까?
누군들 그것을 인정하고 싶겠습니까?
아무리 오래 앓았고, 의사가 마음 준비 하라고 했어도
사랑하는 부모가 돌아가셨는데, 사랑하는 내 자식이 죽었는데 어떻게?
그러나 인정하고 싶지 않고 그래서 실감이 나지 않아도
모든 것이 허물어지고 사라질 때는 반드시 닥칠 겁니다.
그러니 파멸의 때가 들이닥치지 않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애착하는 것을 하나하나 끊어버리고,
파멸의 때를 마음으로 각오하고 준비도 해야겠지만
파멸의 때를 그리스도 재림의 때로 바꾸고 주님을 기다리는 겁니다.
그러므로 전례력으로 이 한 주가 가면 벌써 대림절이 시작되는데
모든 것이 낙엽 따라 가버린 뒤에 오시는 주님을 우리는 기대하도록 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