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 말을 듣고 실천하는 이는 모두
자기 집을 반석 위에 집을 짓는 슬기로운 사람과 같을 것이다.”
대림절에 이 말씀을 듣습니다.
그런데 대림절은 성탄을 준비하는 시기,
곧 주님의 오심을 기다리며 준비하는 시기이기에
말씀으로 오시는 주님을 우리가 어떻게 준비하고
어떻게 모셔들어야 하느냐의 관점에서 우린 이 말씀을 들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이것을 프란치스코의 관점에서 또한 볼 수 있을 것입니다.
프란치스코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가 거룩한 사랑과 순수하고 진실한 양심을 가지고
우리의 몸과 마음에 그분을 모실 때 우리는 그분의 어머니들이 됩니다.
다른 이들에게 빛을 비추는 거룩한 행실로써 우리는 그분을 낳게 됩니다.”
프란치스코는 우리도 마리아처럼 말씀의 어머니가 될 수 있다고 얘기하는데
그것은 마리아처럼 말씀의 잉태와 말씀의 출산을 통해서 그렇게 됩니다.
헌데 한 여자가 어머니가 되는 것은 태아의 임신에서부터 시작되듯 우리가
말씀이신 주님의 어머니가 되는 첫 번째 단계는 말씀을 잉태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어떻게 해야 말씀을 잉태할 수 있겠습니까?
이에 대해 <거룩한 사랑과 순수하고 진실한 양심을 가지고>라고
프란치스코는 얘기하는데 말씀을 거룩한 사랑으로 잉태하고,
순수하고 진실한 양심으로 잉태하라는 거지요.
먼저 거룩한 사랑으로 잉태해야 하는데 거룩한 사랑이란 정결입니다.
하느님의 말씀을 사랑해야 하고
하느님의 말씀만 사랑해야 합니다.
이는 저를 사랑한다는 어떤 여인의 속삭임보다
저를 사랑한다는 주님의 말씀을 제가 더 사랑하는 것과 같고
매일 듣는 주님의 말씀이 그 어떤 말이나 글보다 꿀맛 같이 되는 것입니다.
다음으로 순수하고 진실한 양심을 가지고 잉태하는 것인데
순수하고 진실한 양심이란 가난이며 욕심이 아닌 것입니다.
우리 마음이 순수하고 진실하지 않으면 욕심으로 가득 차게 되는데
마음이 욕심으로 가득 찰 때 우리는 하느님의 말씀을 듣지 않고
나의 욕심을 채워달라고 조르는 말만 하게 될 것입니다.
하느님의 말을 듣는 것이 아니라 내가 하고 싶은 말만 하는 겁니다.
그러므로 말씀의 어머니가 되기 위해 대림절에 우리가 해야 할 것은
우리의 마음에서 세속적인 사랑과 욕심들을 비워버리는 것입니다.
세속적인 사랑과 욕심을 비워내야지만 우리 마음이 하느님의 말씀을
무엇보다 사랑하고 갈망하게 되어 잉태하게 되는 것입니다.
말씀의 잉태는 열 달 동안의 임신을 거쳐 출산으로 이어져야 합니다.
하느님의 말씀은 한 번 들은 것으로 바로 실천이 되지 않습니다.
그런데 내가 만일 하느님 말씀을 듣는 즉시 실천할 수 있게 되었다면
그것은 그 말씀이 나의 전 존재를 바꿔놓을 정도로 충격적인 때일 겁니다.
일생의 몇 차례 우리는 그런 하느님의 말씀을 듣지만
많은 경우는 한 번 들은 것이 바로 실천으로 이어지지 않고
수없이 듣고, 수없이 묵상하고, 수없이 실천키로 다짐하는 것이 반복되어야
말씀이 체화되어 실천으로 이어지는 것입니다.
프란치스코는 <몸과 마음에>라고 분명히 얘기합니다.
거룩한 사랑과 순수하고 진실한 마음을 가지고 마음 뿐 아니라
몸에도 주님의 말씀을 모시라는 것인데 그것을 우리말로 바꾸면
말씀을 체화體化하는 것 또는 신체화身體化하는 것입니다.
마음의 거부가 신체화하면 대상포진, 신경성 두통과 같이 몸으로 나타나듯
마음의 사랑이 신체화하면 말씀의 들음이 실천으로 이어지는 것입니다.
대림절이란 하느님 말씀이 신체화하는 기간임을 묵상하는 오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