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께서는 아벨과 그의 제물은 기꺼이 굽어보셨으나
카인과 그의 제물을 굽어보지 않으셨다.
그래서 카인은 몹시 화를 내며 얼굴을 떨어뜨렸다.”
드디어 살인죄 얘기가 나옵니다.
최초의 살인죄 얘기입니다.
황순원의 <카인의 후예>라는 소설도 있듯이
그래서 우리는 모두 카인의 후예들입니다.
그러니까 아담과 하와가 하느님께 죄를 지은데 이어
그의 아들인 카인이 인간을 죽이는 죄를 지은 것인데
그런데 창세기는 이것을 인간에게 죄를 지은 것이 아니라
하느님께 죄를 지은 거라고 얘기하고 있고, 더 나아가
하느님으로 인해 죄를 지은 거라고 얘기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게 무슨 말인가요?
하느님께 죄를 지은 거라는 말은 이해가 되는데
하느님으로 인해 죄를 짓는다니 이게 말이 됩니까?
그런데 창세기를 보면 분명히 하느님 때문에 죄를 짓습니다.
아담과 하와의 편애 때문에 카인이 아벨을 죽인 게 아니라
하느님이 아벨의 제물을 더 어여삐 보셨기에 죄를 지었지요.
그렇다면 우리는 여기서 질문을 하게 됩니다.
하느님께서 정말 편애를 하신 것일까?
그리고 하느님을 정말로 변호하고 싶습니다.
편애하시는 분이 아니고 편애하신 것이 아니라고.
신약의 예수님께서는 하느님은 선한 사람과 악한 사람에게
똑같이 햇빛과 비를 주시는 분이시라고 얘기하시는데
구약은 인간을 투사하여 편애하시는 분으로 잘못 이해한 거라고.
그런데 저는 신약의 입장에서 이렇게 이해하기도 하지만
오늘은 굳이 하느님을 변호하지 않으렵니다.
하느님도 죄를 지으십니다.
인간을 죄짓게 하는 죄를 지으십니다.
인간이 하느님 때문에 얼마나 많이 죄를 짓습니까?
인간이 하느님 사랑을 이해하지 못하여 얼마나 많이 죄를 짓습니까?
고통을 주시는 하느님의 사랑을 이해하지 못하여 죄를 짓게 하시고,
하느님이 나는 사랑해주지 않고 나만 미워하는 것처럼 보이거나
나보다 저 사람을 더 사랑하시는 것처럼 오해케 하시어 죄짓게 하시잖아요?
그래래서 저는 이것을 묵상하며
교리적인 오류가 있는지 모르지만 이런 기도문을 지어봤습니다.
“주님, 하느님, 당신은 본질적으로 죄인이시나이다.
당신의 그 다 알 수 없음이 저희를 근본적으로 죄 짓게 하나이다.
그중에서도 당신의 그 다 알 수 없는 사랑이 저희를 죄짓게 하나이다.
너무도 크고, 넓고, 높고, 깊은 사랑을 다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물론
오해를 하게 하심으로 당신은 저희를 본질적으로 죄짓게 하시나이다.
이것을 알아가고 깨달아가기까지 죄를 짓고 또 지었으며
아직도 그리고 영원히 다 깨달을 수 없기에 죄를 또 짓게 될 것이니
이런 저희를 용서하시고 자비를 베푸소서.
아니, 이런 저희임을 당신은 다 아시기에 이해하시리라 믿나이다.
이런 저희어도 당신은 저희를 사랑하고 차등 없이 사랑하심을 믿나이다.
당신은 카인과 아벨의 제물이 달라도 달리 받아주시고,
카인과 아벨의 정성이 차이가 나도 달리 받아주시지만
당신의 사랑만은 차이가 나지 않는다는 것을 믿나이다.
아니, 믿음이 부족하면 믿게 하소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