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좋아하는 단식은 이런 것이 아니겠느냐?”
사순절을 시작하며 식탁에서 자연스럽게 단식 얘기가 나왔고,
농담 삼아 형제들이 저의 단식을 지정해주었습니다.
단식은 제일 좋아하는 것을 끊어야 된다고.
그러니 저는 제가 제일 좋아하는 소금과 고춧가루를 끊어야 한다고.
그러고 보니 이것이 하느님께서도 좋아하시고
저에게도 좋은 단식이 아닐까 생각이 되었습니다.
아전인수 격의 생각인지 모르지만
제가 할 수 있고, 기꺼이 할 수 있는 단식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내가 기꺼이 할 수 있는 단식이 바로
하느님께서도 좋아하시는 단식이라는
저의 궤변과도 같은 주장은 해명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사실 소금 안 먹고 고추 가루를 안 먹는 단식은
제가 제일 좋아하는 것들을 끊는 것이니 의미가 결코 작지 않고
어렵긴 해도 할 수 있는 것이기에 이번 사순절에 하고 싶었던 것입니다.
솔직히 말씀드려서 좋아하는 술도 이번에 같이 끊으라고 형제들이 권했는데
술은 개인적으로도 끊기 어렵지만
같이 식사하거나 술을 하는 자리가 많은 것 때문에 번번이 실패했었기에
술 끊는 것은 자신이 없었고 그래서 기꺼운 마음도 생기지 않았던 것이지요.
그러나 소금과 고춧가루는 제 건강에도 나쁠 것 없고,
누가 권하지 않는 것은 물론 오히려 줄이라고 하는 것이며
무엇보다 하느님께서 형제들을 통해 정해주신 것처럼 여겨져
하느님께서도 좋아하시고 저에게도 좋은 단식이라고 생각된 것입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큰 이유는 아무리 작은 거라도 억지로 하는 것보다
기꺼이 하는 것을 하느님께서도 좋아하실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렇긴 하지만 정말로 하느님께서 좋아하실 단식을
오늘 이사야서는 사랑의 단식이고 정의로운 사랑의 단식이라고 얘기합니다.
식욕을 끊는 것보다는 탐욕을 끊는 것이 더 낫다는 말씀이요,
음식을 끊는 것보다는 악행을 끊는 것이 더 낫다는 말씀이며,
자학적인 단식보다는 희생적인 단식이 더 낫다는 말씀이고,
고행적인 단식보다는 사랑의 단식이 더 낫다는 말씀입니다.
단식만 하고 자선을 하지 않는다면
건강이나 미용을 위한 단식과 다를 바 없고
그래서 그 단식은 자기만족을 위한 것일 뿐
하느님을 위한 것도 아니고 이웃을 위한 것도 아닙니다.
그래서 저는 소금과 고춧가루를 끊는 것이 내게도 좋고
하느님께서도 좋아하실 단식이라고 의기양양하다가
이럴 수밖에 없는 저를 부끄러워하며
이럴 수밖에 없는 저를 또한 겸손하게 인정해야만 했습니다.
옛날 쌀이 귀할 때 성미聖米라는 것이 있었지요.
밥 한 끼 지을 때마다 싼 한 숟갈을 따로 모으고
그것을 하느님께 바치거나 그것으로 이웃을 돕곤 하였지요.
제 생각에 이 십시일반十匙一飯적인 성미의 단식이 지금도 필요합니다.
아무리 작은 단식이어도 사랑을 위해서 하는 단식 말입니다.
그러니 소금과 고춧가루를 끊는 저의 단식도
그저 제가 좋아하는 것을 끊는다는 차원에서 할 게 아니라
이웃사랑을 위해서 좋아하는 것을 끊는다는 그런 차원에서 해야
그나마 의미 있는 단식, 사랑이 단식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