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칙은 편하고 자유는 위험하다.
나이를 먹으면서 자칫 잘못하면 아주 안 좋은 삶의 자세가 생깁니다.
그것은 개인적으로도 그렇지만 공동체적으로 그렇습니다.
오래된 그래서 전통이 있는 수도원은 전통이랄까 관습이 있지요.
예를 들어 저도 젊고 공동체도 젊어서 전통이 별로 없었을 때는
무엇을 결정할 때마다 어떻게 하면 좋을지,
어떤 것이 우리의 정신에 맞을지,
하느님께서는 뭘 바라실지 등을 같이 고민을 하고 결정했습니다.
그런데 요즘은 저도 나이를 좀 먹었고 공동체도 전통이 생겨서
무슨 결정을 할 때면 전에 어떻게 했는지 그것을 먼저 살펴보고
그대로 하든지 그것에 준해서 하기로 결정을 합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할지 끙끙댈 필요가 없이 편합니다.
이번 사순절에도 수도원 회의를 하며
어떻게 우리가 사순절을 지낼지 결정하였는데
작년에 어떻게 했는지 그것을 참고하니 결정이 쉬었습니다.
규칙과 규정은 그래서 편하고 또 그대로 하면 별 문제가 없습니다.
그런데 이런 제가 좀 아쉽고 그럴 때마다 이래도 되는지 생각됩니다.
너무 편의주의로만 가고 사랑이 부족한 것처럼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어떤 것이 더 하느님 뜻에 맞는지에 대한 고민이 없고,
어떻게 하는 것이 더 사랑인지 고민을 하는 열정이 없습니다.
그런가 하면 규칙이나 규정과 관련하여 또 다른 문제가 있습니다.
규칙이나 규정을 편의 차원에서는 좋아하면서도
내 마음대로 하고 싶을 때는 규칙이나 규정을 억압으로 생각하고
거추장스럽게 생각하기도 합니다.
인간은 누구나 억압을 싫어하고 자유롭기를 바라잖습니까?
요즘 참으로 많은 사람들이 스트레스라는 것을 받고
그래서 스트레스로 인한 병들이 많은데
스트레스가 도대체 무엇입니까? 심리적인 억압이 아닙니까?
영어로 스트레스Stress는 압박하다, 억압하다의 뜻이지요.
보통 싫은데 하라고 하거나 해야 되는 상황일 때 그게 스트레스이고
싫은 사람하고 살면 일이나 상황보다 더 큰 스트레스를 받기도 하지요.
그래서 인간은 자기 좋을 대로 하고 싶어 하는데
자유가 이런 것일 때 자유는 아주 위험합니다.
결과에 대한 책임을 지지 않고 미래를 망가트리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독서와 복음에 비춰볼 때 두 가지 다 문제가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규칙이나 규정의 편리함에 안주하는 것이나
규칙이나 규정을 부담스럽게 생각하고 파괴하는 것이나
모두다 자기위주의 편의주의라는 면에서 마찬가지로 문제가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런 문제를 극복하게 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제 생각에 그것은 사랑의 자유로 규칙을 지키고
자유로운 사랑으로 규정을 완수하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사랑으로 율법을 완수할 때 율법은 완성됩니다.
그것은 그 규정 준수의 철저함이 아니라 사랑에 있기 때문이고,
율법을 비롯한 모든 법이 본래 소극적이고 최소한의 사랑이기 때문입니다.
규칙을 좋아할 것인가,
자유를 사랑할 것인가,
사랑을 사랑할 것인가?
이것이 문제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