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이스라엘의 최고 의회 의원들과 바리사이들,
그러니까 이스라엘의 정치와 종교 지도자들은
갈릴래아에서는 예언자가 나지 않는다고 단정을 합니다.
이 말이 잘못 되었다고 우리는 비판을 하지만
한 편으로는 맞는 말이기도 합니다.
예언자란 하느님께서 보내시고 하늘로부터 났으니
갈릴래아에서 나지 않는다는 것은 맞는 말이기도 합니다.
우리 신앙인은 내 자식이 나에게서 태어났지만
하느님께서 나에게 태어나도록 하신 거라고 믿지요.
그래서 나에게서 태어났기에 내 자식이라고 하지만
실은 하느님의 소유요 하느님의 자식이라고 하지요.
우리 인간도 신앙의 눈으로 보면 이렇고
예언자도 신앙의 눈으로 보면 이런 것인데
하물며 메시아를 어떻게 지역으로 가둘 수 있습니까?
우리가 신앙인이라면 진실하면 진실할수록 주님을 가두지 말아야 합니다.
요즘 선거를 앞두고 지역주의니 패권주의니 말이 많습니다.
그리고 영남패권주의니 지역주의니 하는 것은 없어져야 한다고도 합니다.
맞습니다.
영남 사람들이 계속 패권을 잡으려고 들어서는 안 되고,
지역주의에 기대 정권을 잡으려 하거나 무조건 반대를 해서도 안 됩니다.
그러니 백성을 위해 참으로 봉사할 사람들을 뽑아야 하고
우리 신앙인들은 하느님의 뜻을 따를 사람들과 정당을 뽑아야 하겠지요.
그런데 그렇지 않고 권력을 어느 지역과 집단이 독식하고 가두려한다면
그것이 너무 편협하며 우리나라와 정치발전에 해가 된다고 비판합니다.
정치와 권력도 이렇게 어디에 갇히고 독식이 되면 안 되는데
우리의 믿음이 어디에 갇히고
그리스도께서 어디에 갇히면 더더욱 안 되겠지요.
갇힐 분도 아니지만 그런 분을 가두려 하기에
정작 우리만 하느님을 만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우선 메시아는 고향 갈릴래아에 갇히면 안 됩니다.
이스라엘이나 유대민족주의에 갇히면 안 됩니다.
그리스도교에 갇혀도 안 됩니다.
성경에 갇혀도 안 됩니다.
오늘 복음에서도 바리사이나 지도자들은 이렇게 얘기하잖아요?
“성경을 연구해보시오. 갈릴래아에서는 예언자가 나지 않소.”
메시아를 그렇게 단호하게 부정하는 근거로 성경을 들먹입니다.
꽃을 화병에 꽂으면 꽃은 얼마 안 가 죽고
화분에 옮겨 심어도 죽거나 크지 못하듯이
메시아도 가두면 안 됩니다.
꽃은 화분에도 있지만 화분에만 있어야 하는 것이 아닙니다.
꽃은 성당에도 있지만 성당에만 있어야 하는 것이 아닙니다.
메시아를 내 안에 가두지 않는 것,
메시아를 우리 안에 가두지 않는 것,
메시아를 우리 종교 안에 가두지 않는 것,
그것이 메시아를 하느님께로 돌려드리는 것이고
메시아를 진정 모든 사람의 메시아이게 하는 거지요.
메시아를 가두는 성경이 있다면 오늘 태워버립시다.
메시아를 가두게 한다면 성당에 나가지 맙시다.
메시아를 내 안에 가두려하거든 나를 죽입시다.
오늘 그리고 이 사순시기에!
"우리가 신앙인이라면
진실하면 진실할수록
주님을 가두지 말아야합니다."
식별의 은총을 받아
(진실한) 신앙인이 되고 싶습니다.
식별의 능력이 있어
메시아를 가두는 성경연구에 빠지는 어리석음이 저에게는 없기를!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