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주님의 말씀은 빵의 기적 얘기를 듣고
뒤늦게 주님을 찾아온 사람들에게 하신 말씀입니다.
이들은 어떤 사람들입니까?
티베리아스에서 빵의 기적이 일어난 곳으로 갔다가
거기에 주님과 제자들이 없는 것을 알고서는
가파르나움을 거쳐 지금 주님이 계신 곳까지 찾아온 이들이지요.
주님을 만나기 위해 대단한 열성을 보인 셈인데
주님은 이들의 열성을 열성으로 보기보다는
욕심에서 비롯된 극성으로 보는 것 같습니다.
이 세상 양식을 찾으려는 극성 말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썩어 없어질 양식을 얻으려고 힘쓰지 말고,
길이 남아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하는 양식을 얻으려고 힘쓰라.”
이렇게 핀잔과도 같은 말씀을 하시니 머쓱한지 이렇게 여쭙니다.
“하느님의 일을 하려면 저희가 무엇을 해야 합니까?”
이에 주님께서 또 다시 핀잔 식으로
“하느님의 일은 그분께서 보내신 이를 너희가 믿는 것이다.”고 답하십니다.
제가 주님의 말씀이 다 핀잔 식이라고 얘기한 이유는
사람들이 주님을 찾아온 이유나 하느님의 일을 들먹이는 이유가
주님께서 생각하시는 것과는 의도가 다른 것으로 보이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 양식을 얻으려 찾아온 것은 말할 것도 없고
하느님의 일을 하기 위해 뭘 해야 하는지 묻는 것도
다 자기만족을 위한 것일 가능성이 높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는 오늘 복음을 읽고 이렇게 저 자신을 성찰했습니다.
나는 무엇을 얻으려고 하는가?
나는 하느님의 일을 하고 있는가?
한다면 어떤 하느님의 일을 하고 있는가?
그제는 오랜만에 고등학교 동창들을 만났고 미사를 드리면서
아픈 친구들과 교통사고를 당한 친구 딸을 위해 기도했습니다.
그리고 어제는 마라톤 대회에 나가 뛰기 전에 역시
아픈 친구들과 친구 딸을 위해 마라톤을 봉헌키로 마음먹었습니다.
그러나 실제 출발을 하고 나니 봉헌하는 마음은 온데간데없고,
약간의 경쟁심과 빨리 달리고자 하는 마음뿐이고
특히 도착 몇 km를 앞두고 고통이 심해지니까
온통 나의 고통에만 머물러 있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뛰면서 생각을 하였습니다.
제 친구였다면 저처럼 자기 고통에만 머물까?
자기 딸을 위해 그 고통을 봉헌하지 않았겠습니까?
그래서 어제는 뛰고 난 뒤에도 별로 기쁘지도 않고
뭔가 씁쓰레한 것만 남았습니다.
제가 얻고자 하는 것은 만족이지 사랑이 아니며
제가 무엇을 하고자 하는 것은 성취를 위해서지
결코 하느님이나 이웃을 위해서가 아닙니다.
그러니 이런 저 자신을 겸손하게 인정하며
제가 지금 벌이고 있는 많은 일들이 마치 하느님의 일인 양
착각을 하지도 말아야 하고 위선을 떨지도 말아야 하겠습니다.
오히려 하느님의 일은 하느님께서 하시는 것이니
하느님의 일은 주님께서 하시리라고 믿기나 하고
주제넘게 내가 하겠다고 나서지 말아야겠습니다.
다만 주님께서 당신의 일을 하시며 저를 도구로 쓰시고자 하실 때
싫다고 하지 않고 기쁘게 할 수만 있어도 좋겠습니다.
싫다고 하지 않고 기쁘게 받아들이고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지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