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자기 큰 지진이 일어나 감옥의 기초가 뒤흔들렸다.
그리고 즉시 문들이 모두 열리고 사슬이 다 풀렸다.”
기시감旣視感이라는 표현을 요즘 많이 씁니다.
어디서 한 번 본 듯한 느낌이라는 표현이지요.
오늘 사도행전의 얘기도 기시감을 갖게 합니다.
그런데 기심감이라는 표현은 본적이 없는데도 본 듯한 느낌이지만
오늘 사도행전의 얘기는 거의 똑같은 사건이 전에도 있었지요.
앞서 얘기한 적이 있듯이 베드로 사도가 병자를 일으키자
바오로 사도도 병자를 일으키는 기적을 행한 얘기가 있고,
사도들이 감옥에 갇혔는데 감옥 문이 저절로 열려 풀려난 일이 있는데
오늘 바오로 사도와 실라도 쇠사슬과 차꼬를 차고 감옥에 갇혔는데
그 모든 것으로부터 다 풀려나게 됩니다.
이것이 실제 일어난 일이 아니라 바오로 사도를
다른 사도들과 같은 사도로 만들기 위해 지어낸 얘기라 할 수도 있지만
실제로 일어난 기적이라고 우리가 믿는다면 여기에 중요한 뜻이 있지요.
이렇게 얘기를 하는 사도행전에는 중요한 메시지가 있는데
그것은 성령의 활동을 인간이 묶을 수 없다는 것이요,
인간이 묶으려 하지만 그 묶은 것을 하느님께서 부수신다는 것입니다.
특히 지상의 권력자들이 더 그러하지만
인간은 자주 성령의 활동을 묶어두려고 하는데
그리 하는 것은 묶어둘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거나
성령께서 하시는 일을 인간이 하는 짓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성령의 활동인줄 알면서도 묶어두려고 하고
묶어둘 수 있다고 하는 것은 무도한 권력자들이 하는 짓이고,
사실은 하느님을 믿지 않는 자가 하느님께 한 번 도전하는 것이겠지요.
‘내가 이렇게 하는데 당신이 존재한다면 어떻게 한 번 해 보슈!’라는 거지요.
그러나 보통의 인간인 우리가 범하는 잘못은 이런 것이라기보다는
성령께서 하시는 일을 인간이 하는 짓으로 오해하는 것이고
뒤집어 얘기하면 인간이 하는 일이 성령께서 하시는 것임을 모르는 겁니다.
왜냐면 인간이 하는 것이 성령께서 하시는 일인지 아닌지 식별하는 것이
그만큼 어려운 것이기 때문이기도 하고 그 이전에
인간의 행위가 성령께서 하시는 거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않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누가 시장에 가서 생선을 샀다면 그것이 그저 인간의 행위이지
그것을 성령의 행위라고 생각지 않는 것이 보통의 우리이지요.
그렇습니다. 장에 가서 생선을 산 것이 대부분은 그저 인간의 행위입니다.
그러나 어떤 때 그것이 성령의 이끄심일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성령은 불고 싶은 데로 부는 바람 같기에 그 활동을 알 수 없다는
거룩한 두려움/경외심이 없다면 성령의 활동을
너무도 쉽게 인간의 행위로 판단하고 말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것을 아는 우리는 두렵습니다.
오늘 사도행전의 행전관처럼 성령의 활동을 몰라볼까봐.
그러나 우리는 이런 두려움을 갖고 있어야 합니다.
세상 권력자의 박해나 인간의 악행을 두려워할 필요는 없지만
인간의 모든 기도를 다 부숴버릴 수 있는 성령의 활동에 대한 두려움과
나도 모르게 성령의 활동을 막을 수 있음에 대한 두려움은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두려움보다 더 큰 믿음 또한 우리에게 있어야 하겠습니다.
성령께서 하시는 일이라면 아무리 힘 있는 사람이 막으려 해도
막을 수 없다는 것을 말입니다.
성령의 활동에 대한 두려움과 믿음을 주십사고 청하는 오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