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알 하나가 땅에 떨어져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지만,
죽음을 선택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나 자신이 소중하기에
내 생명을 포기한다는 것,
그 죽음이 육체적인 죽음이던, 정신적인 죽음이던,
그것은 쉽지 않습니다.
나라는 존재가 없어지고,
결국에는 무로 돌아갈 것 같은 허무함이
결론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다른 측면에서는
나라는 존재가 없어진다는 것이,
다른 사람과의 관계 안에서
다른 사람이 나를 무시하고,
그림자처럼 대할 것 같은 두려움도 있습니다.
하지만 밀알 하나가 땅에 떨어져 죽지 않으면
한 알 그대로 남습니다.
나라는 존재가 무시 받지는 않지만,
나는 다른 사람 속으로 들어갈 수 없고,
다른 사람이 내 안으로 들어올 수도 없습니다.
즉 서로 일치를 위한 접점을 찾을 수 없게 되고,
결국에는 외톨이가 되고 맙니다.
그리고 그 외톨이라는 존재는 결국
하느님도 받아들이지 못하고,
하느님을 거부하는 결과를 가져오게 됩니다.
반면 죽음을 선택하는 것은
십자가를 선택하신 그리스도를 따라가는 길입니다.
오늘 복음에 따르면
그렇게 그리스도를 따라갈 때,
우리는 그리스도오 함께 할 수 있고,
그렇게 영원한 생명에 도달할 수 있습니다.
물론 무시당하고 허무함을 느끼게 될 것 같은 두려움 때문에
죽음을 선택하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더 나아가 죽음을 통해서
그리스도와 일치할 수 있다는 확신이 없기에
더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외톨이가 되는 것을 선택하기보다
막연한 두려움 속에서도 죽음을 선택하는 것이
더 복될 것입니다.
그리스도와의 일치에 대한 믿음이 부족하기에
죽음을 선택하기가 쉽지는 않지만,
우리 안에 어렴풋이나마 있는 믿음으로
죽음을 선택할 수 있을 때,
우리는 하느님과 조금이나마 일치할 수 있고,
그 일치의 힘으로 조금 더 나 자신을
다른 사람을 위해 내어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게 조금씩 조금씩 우리 자신을 내어주면서,
우리의 믿음이 성장할 수 있을 때,
마지막에 우리는 그리스도처럼
우리 자신을 온전히 내어 주고,
그리스도와 온전히 일치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하느님과의 일치의 기쁨을 위해서
조금씩 나 자신을 내어 놓는 죽음을
선택해 갈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