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를 빕니다. 오늘은 부활 팔일축제 마지막 날입니다.
우리는 부활 팔부축제 기간 동안 각 복음에서 전하고 있는 예수님의 발현사화에 대해 들어왔습니다.
부활 팔일축제 마지막 날인 오늘은 마르코복음이 전하고 있는 발현사회를 들었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살아난 당신을 본 이들의 말을 믿지 않은 제자들의 불신과 완고한 마음을 꾸짖으십니다. 그리고 제자들에게 “너희는 온 세상에 가서 모든 피조물에게 복음을 선포하여라.”라고 이르십니다.
한 주간 동안 복음이 우리에게 전해주고 있는 메시지의 핵심은 죽음을 물리치시고 부활하신 예수님의 이 부활사건을 굳게 믿고 부활의 힘찬 증인이 되라는 것입니다.
저는 이번 한 주간의 팔부축제를 지내면서 한 단어를 많이 묵상할 수 있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COMMUNIO’라는 단어였습니다. 이는 ‘친교’라는 뜻을 지니고 있는 라틴어입니다. 또한 ‘영성체’를 라틴어로 말할 때 이 단어를 사용하기도 합니다.
저는 신학교에서 교회론과 사목신학을 현재 가톨릭대학교 총장으로 계신 임병헌 신부님한테서 배웠습니다. 신부님께서 수업시간에 자주 사용하셨고, 강조하셨던 단어가 바로 ‘COMMUNIO’입니다.
한번은 수업시간에 ‘짜장면 이야기’를 해주셨습니다. “어느 날 신학교 대건관 친구들이 나만 쏙 빼놓고 혜화동 금문식당으로 짜장면을 먹으러 갔다.” 그러시면 하시는 말씀이 “그 때 기분이 어떨까?”
‘소외’에 대해서 말씀하신 것이지요. 그러시면서 하신 말씀이 ‘소외’라는 ‘친교에서의 배제’, ‘관계단절’이 바로 ‘지옥의 상태’이고, 이 지옥의 상태는 서로의 불신으로부터 시작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의 관계 안에서 가장 무서운 것은 불신, 신뢰관계가 무너지는 것이 아닌가 생각해봅니다. 옛말에 “나는 네가 콩으로 메주를 쑨다하여도 믿지 않는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는 서로의 신뢰관계가 무너져 있음을 극단적으로 표현주는 말입니다.
신뢰관계가 무너지면 관계가 단절되고, 친교가 단절됩니다. 그러할 때 나타나는 현상은 옆에 있지만 서로 눈을 마주치지 않고, 서로 말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가 지금 여기에서 경험할 수 있는 지옥의 상태라고 생각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불신의 벽을 털어버리고 새로운 친교, 새로운 관계회복을 위해, 지옥의 상태를 천국의 상태로 바꾸어주시고자 이 세상에 오셨고, 우리를 위해 죽으셨고, 부활하셨습니다.
친교의 제왕은 예수님이십니다. 예수님께서는 항상 먼저 손을 내미십니다. 자기들도 예수님처럼 죽게 되지나 않을까 다락방에 숨어 무서워 벌벌 떨고 있는 제자들에게, 소외된 이들에게, 아픈 이들에게
먼저 다가가시어 손을 내미십니다.
예수님께서는 힘들어하고 있는 네가 나를 찾아오도록 기다리지 않고 먼저 다가가시어 아픔을 들어주시고, 아픈 마음을 안아주시고, 손을 잡아 일으켜 세워주십니다. 이것이 예수님이 행하신 친교입니다.
우리들 역시 지금 여기에서 너와의 관계 안에서 행해야 하는 친교가 바로 이것이 아닌지요???
기다리는 친교, 네가 내게 다가오기를, 네가 내게 먼저 손을 내밀기를 기다리는 친교는 예수님께서 행하셨던 친교가 아닙니다. 이러한 친교는 오히려 가진 자, 힘 있는 자들이 행하는 친교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지금 여기에서 불신의 벽을 털어버리고, 믿음의 관계를 재정립하는 것. 그래서 단절되었던 관계를 회복하고, 새로운 친교를 맺는 것, 이것이 바로 나의 부활이요 우리의 부활이고, 우리가 지금 여기에서 살아야 할 부활의 삶이 아닌가 생각해봅니다.
불신을 털어버리고 강한 믿음이 함께 했기 때문에 제자들은 세상 밖으로 나아가 힘차게 부활을 선포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도 부활을 체험하고 목격한 증인들인 사도들이 전하는 말씀을 온 마음으로 굳게 믿도록 합시다!!!
이 믿음이 내 안에 굳게 자리 잡을 때 우리도 역시 제자들처럼 너와의 끊어졌던 관계, 친교를 다시 회복하고, 세상 안에서 힘차게 주님의 부활을 말과 행동으로 선포할 수 있을 것입니다. 아멘.
우리는 부활 팔부축제 기간 동안 각 복음에서 전하고 있는 예수님의 발현사화에 대해 들어왔습니다.
부활 팔일축제 마지막 날인 오늘은 마르코복음이 전하고 있는 발현사회를 들었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살아난 당신을 본 이들의 말을 믿지 않은 제자들의 불신과 완고한 마음을 꾸짖으십니다. 그리고 제자들에게 “너희는 온 세상에 가서 모든 피조물에게 복음을 선포하여라.”라고 이르십니다.
한 주간 동안 복음이 우리에게 전해주고 있는 메시지의 핵심은 죽음을 물리치시고 부활하신 예수님의 이 부활사건을 굳게 믿고 부활의 힘찬 증인이 되라는 것입니다.
저는 이번 한 주간의 팔부축제를 지내면서 한 단어를 많이 묵상할 수 있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COMMUNIO’라는 단어였습니다. 이는 ‘친교’라는 뜻을 지니고 있는 라틴어입니다. 또한 ‘영성체’를 라틴어로 말할 때 이 단어를 사용하기도 합니다.
저는 신학교에서 교회론과 사목신학을 현재 가톨릭대학교 총장으로 계신 임병헌 신부님한테서 배웠습니다. 신부님께서 수업시간에 자주 사용하셨고, 강조하셨던 단어가 바로 ‘COMMUNIO’입니다.
한번은 수업시간에 ‘짜장면 이야기’를 해주셨습니다. “어느 날 신학교 대건관 친구들이 나만 쏙 빼놓고 혜화동 금문식당으로 짜장면을 먹으러 갔다.” 그러시면 하시는 말씀이 “그 때 기분이 어떨까?”
‘소외’에 대해서 말씀하신 것이지요. 그러시면서 하신 말씀이 ‘소외’라는 ‘친교에서의 배제’, ‘관계단절’이 바로 ‘지옥의 상태’이고, 이 지옥의 상태는 서로의 불신으로부터 시작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의 관계 안에서 가장 무서운 것은 불신, 신뢰관계가 무너지는 것이 아닌가 생각해봅니다. 옛말에 “나는 네가 콩으로 메주를 쑨다하여도 믿지 않는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는 서로의 신뢰관계가 무너져 있음을 극단적으로 표현주는 말입니다.
신뢰관계가 무너지면 관계가 단절되고, 친교가 단절됩니다. 그러할 때 나타나는 현상은 옆에 있지만 서로 눈을 마주치지 않고, 서로 말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가 지금 여기에서 경험할 수 있는 지옥의 상태라고 생각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불신의 벽을 털어버리고 새로운 친교, 새로운 관계회복을 위해, 지옥의 상태를 천국의 상태로 바꾸어주시고자 이 세상에 오셨고, 우리를 위해 죽으셨고, 부활하셨습니다.
친교의 제왕은 예수님이십니다. 예수님께서는 항상 먼저 손을 내미십니다. 자기들도 예수님처럼 죽게 되지나 않을까 다락방에 숨어 무서워 벌벌 떨고 있는 제자들에게, 소외된 이들에게, 아픈 이들에게
먼저 다가가시어 손을 내미십니다.
예수님께서는 힘들어하고 있는 네가 나를 찾아오도록 기다리지 않고 먼저 다가가시어 아픔을 들어주시고, 아픈 마음을 안아주시고, 손을 잡아 일으켜 세워주십니다. 이것이 예수님이 행하신 친교입니다.
우리들 역시 지금 여기에서 너와의 관계 안에서 행해야 하는 친교가 바로 이것이 아닌지요???
기다리는 친교, 네가 내게 다가오기를, 네가 내게 먼저 손을 내밀기를 기다리는 친교는 예수님께서 행하셨던 친교가 아닙니다. 이러한 친교는 오히려 가진 자, 힘 있는 자들이 행하는 친교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지금 여기에서 불신의 벽을 털어버리고, 믿음의 관계를 재정립하는 것. 그래서 단절되었던 관계를 회복하고, 새로운 친교를 맺는 것, 이것이 바로 나의 부활이요 우리의 부활이고, 우리가 지금 여기에서 살아야 할 부활의 삶이 아닌가 생각해봅니다.
불신을 털어버리고 강한 믿음이 함께 했기 때문에 제자들은 세상 밖으로 나아가 힘차게 부활을 선포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도 부활을 체험하고 목격한 증인들인 사도들이 전하는 말씀을 온 마음으로 굳게 믿도록 합시다!!!
이 믿음이 내 안에 굳게 자리 잡을 때 우리도 역시 제자들처럼 너와의 끊어졌던 관계, 친교를 다시 회복하고, 세상 안에서 힘차게 주님의 부활을 말과 행동으로 선포할 수 있을 것입니다. 아멘.
나누자 일명 뿐빠이 가보시키 식으로 가는 길. 내 비록 가진건 없다손 치더라도
사랑하는 그 마음에서 비롯된 나눔은 이루카와 저와도 이토록 즐겁지 아니한가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