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의 은총을 헛되이 받는 일이 없게 하십시오.”
은총을 헛되이 받는다는 것이 무엇일까?
어떻게 받는 것이 은총을 헛되이 받는 것일까?
이 생각을 할 때 제일 먼저 떠오는 것이 길 가다가 전단지를 받는 겁니다.
아파트 분양 광고 전단지를 주는데 저는 필요 없지만 그것을 돌리는 분이
손이 민망하지 않도록 또는 다른 분이 안 받아주니 나라도 받자며 받습니다.
이런 경우 집에 가지고 와서는 읽지도 않고 그냥 쓰레기통에 버리지요.
그런데 문제는 개신교 신자들이 선교를 위해 전단지를 돌리는 경우입니다.
복음을 전하려는 그들의 열성을 존중까지는 못할지라도 무시할 수 없어서
받아가지고 집에 와서 아파트 전단지와 마찬가지로 쓰레기통에 버리려다가
성 프란치스코의 모범과 말씀이 생각나 전단지를 읽습니다.
프란치스코가 형제와 함께 길을 가는데 종이쪼가리가 떨어져 있었지요.
우리 같으면 길에 떨어진 종이쪼가리는 쓰레기에 불과한데 프란치스코는
그것을 아주 정성껏 줍는 것이었고 그래서 형제가 왜 줍는지 물었지요.
이에 프란치스코는 이 종이쪼가리에 하느님을 부를 때 쓰이는
그 ‘하’자가 들어있을 수 있으니 그것을 정성껏 주어야 한다고 답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단의 글이 적혀있는 종이쪼가리라도
거기서 하느님을 발견해야 한다고 프란치스코는 덧붙여 이야기하였지요.
여기서 볼 수 있는 것이 성인과 우리의 차이입니다.
성인은 쓰레기 안에서도 하느님을 발견하고
우리는 복음을 듣고서도 하느님을 발견치 못합니다.
그야말로 우리는 수많은 은총들을 쓰레기처럼 버립니다.
하느님의 말씀들을 그냥 헛소리로 흘려버리는 것입니다.
성경을 통해 하시는 하느님 말씀을 헛소리로 흘려버립니다.
이웃을 통해 하시는 하느님 말씀을 헛소리로 흘려버립니다.
바람을 통해 하시는 하느님 말씀을 그야말로 바람결에 흘려버립니다.
왜 이렇게 흘려버리는 것일까요?
그것은 하느님의 말씀은 목마르지 않은데
다른 것이 더 내게 소중하기 때문일 것이고,
하느님의 말씀은 재미가 없는데
TV 연속극은 재미가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한 마디로 나는 다른 것으로 너무 배가 부르고
다른 재미있는 것이 TV나 인터넷에 널려 있습니다.
TV를 봐도 어떤 분은 평화방송을 보는데
어떤 사람은 연예인들의 그 허접스러운 프로그램을 보고
인터넷에 들어가서도 복음이나 강론을 찾아보는 분이 있는가 하면
그저 아무 유익이 없는 것들만 하루 종일 뒤지는 분도 있을 겁니다.
하루를 미사에 참례하거나 복음읽기와 저의 강론으로 시작하는 여러분들은
은총을 헛되이 받아들이는 분들은 아니기에 치하를 드리며
앞으로도 꾸준히 그러하시길 기원하고 기도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