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세상에 평화를 주러 왔다고 생각하지 마라.
평화가 아니라 칼을 주러 왔고, 갈라서게 하려고 왔다.”
오늘 주님께서는 평화가 아니라 칼을 주러 왔다고 하시고,
가족 간에 갈라서게 하기 위해 오셨다고 하시는데
칼로 관계를 끊어 갈라서게 하고 원수가 되게 하시겠다는 말씀이지요.
여기서 저는 오늘 주님 말씀을 조금 비틀어서 묵상해봤습니다.
주님께서 진정 원하시는 것이 우리가 서로 갈라서는 것인지
아니면 맞서는 것인지 생각해 본 것입니다.
제 생각에 주님께서는 갈라서는 것보다 맞서기를 더 바라실 겁니다.
주님의 적극적인 주문은 갈라서는 것보다는
우리가 맞서는 게 아닐까 생각한 겁니다.
갈라서는 것은 쉬운 것이고 사랑이 아닙니다.
주님께서 원하신 것이 사랑이고 원수까지 사랑하라는 것 아닙니까?
맞서는 것이 사랑이 아닌 사랑은 맞서지 못합니다.
제 생각에 맞서도 사랑인 사랑이 맞설 수 있고
맞설 수 있는 사랑이라야 사랑입니다.
물론 사랑의 맞섬과 달리 적대적인 맞섬도 있지만
사랑의 맞섬은 그가 원수이기에 맞서는 것이 아니라
사랑하기에 맞서는 것이고 그래서 그를 위해 맞서는 것이지요.
쉽게 생각할 수 있는 것이 그가 잘못된 길을 가려고 합니다.
그럴 때 “너는 그 길을 가냐, 나는 이 길을 가련다!‘하고 갈라선 다음
그 길을 가게 버려 둘 수도 있지만 그래서는 안 된다고 막아서는 거지요.
맞서는 것은 마주 서는 것이니
부닥치고 싸우기 싫어 돌아서는 것보다 사랑이고,
그러기에 갈라서는 것보다는 맞서는 것이 더 사랑입니다.
그런데 막아서고 맞섰는데도 끝내 그가 그 길을 갈 뿐 아니라
오히려 그가 더 큰 힘으로 내 가는 길을 막고 못 가게 하다면
그때는 어쩔 수 없이 갈라서야 하고 내 길을 가야 하겠지요.
그런데 오늘 주님 말씀의 더 큰 맥락은 주님을 따름입니다.
주님 없이 그저 네 길과 내 길이 다른 것이 아니라
나의 길은 주님을 따르는 길인데 그는 주님을 따르지 않는,
그야말로 그만의 길이기에 갈라서는 것입니다.
너무도 서로를 사랑하는 남녀가 있습니다.
그러나 여자는 남자도 사랑하지만 하느님을 더 사랑하기에
같이 하느님을 따르는 길, 곧 수도자의 길을 같이 가자고 하지만
남자는 여자는 사랑해도 하느님은 알지도 못하고 사랑하지도 않습니다.
여자는 여기서 결단을 내려야만 하는데 결국 갈라서는 길을 택할 겁니다.
이때 여자는 불행합니까?
이때 여자는 사랑을 잃은 겁니까?
아닙니다.
마침내 배가 항구에 안전하게 정착하듯
영원한 사랑에 정착을 하고 영원한 행복을 얻은 거지요.
아무튼 맞서든 갈라서든 사랑이 되어야 함을 묵상하는 오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