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비유 말씀을 들으면서
문득 광야에서의 이스라엘 백성이 떠올랐습니다.
이집트에서 탈출한 이스라엘 백성은
40년이라는 시간을 광야에서 보내게 됩니다.
그들은 자유를 향해 이집트에서 나왔지만,
그들에게 자유라는 욕구가 가장 크다고 생각했지만,
막상 광야로 나왔을 때 그들에게 나타난
가장 큰 욕구는 먹을 것과 마실 것이었습니다.
그들은 먹을 것과 마실 것이 없다고 불평하였고,
그래서 하느님께서는 바위 틈의 물과 만나를 내려 주십니다.
하느님께서 만나를 주시면서 하시는 말씀은
'그날 먹을 만큼만 모으라'는 것이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더러는 더 많이,
더러는 더 적게 거두었지만,
저마다 먹을 만큼 거두어들였다고 성경은 전하고 있습니다.
모세는 이어서 그것을 다음 날까지 남겨 두지 말라고 하는데,
남겨 둔 것들은 다음 날 먹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
한 데나리온.
그것은 그 당시의 하루 품삯에 해당하는 금액이었습니다.
즉 한 가족이 하루를 살기에 그 만큼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한 시간만 일한 사람에게도
주인이 한 데나리온을 주었다는 것은
그의 가족이 하루를 살아갈 수 있도록 해 주었음을 의미합니다.
즉 만나를 적게 거두어들인 이들도
먹을 것이 모자라지 않았다는 것과 연관이 됩니다.
그러나 어려움은 처음부터 일했던 사람입니다.
그 사람은 처음에 하루 일당을
한 데나리온으로 합의했지만,
마지막에 가서는 시급이 한 데나리온이라고 생각했고,
그래서 자신은 적어도 열 시간은 일했기에
적어도 열 데나리온은 받아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다시 구약의 모습을 볼 때,
더 많이 거둔 이도 남지 않았다고 이야기 하며,
더 나아가 남겨 둔 그것이 다음 날에는 멀을 수 없는 것으로
변해 있었다고 성경은 전하고 있습니다.
참 불의합니다.
이것은 정의가 아닌 것 같습니다.
노동에 정당한 대가가 주어지지 않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구약의 만나 이야기나
오늘 복음이 이야기 하려는 것은
노동에 대한 정당한 보수, 즉 정의가 아닙니다.
한 가족이 하루를 살기에 한 데나리온이 필요하다는 것은,
한 가족에게 한 데나리온은
하루를 위해 충분한 양이라는 뜻입니다.
그 이상 더 필요하지 않다는 말입니다.
필요 이상의 재물은 사람을 재물에 의지하게 만듭니다.
물론 재물에 의지하는 것이 잘못은 아니지만,
재물에 의지할수록 하느님을 찾지 않게 되며,
결국 하느님에게서 멀어집니다.
오늘 비유의 대상은 하늘 나라입니다.
하늘 나라에서 우리가 어떻게 하느님과 함께 살아갈지를
비유를 통해서 말씀하고 계십니다.
하느님 아버지께서는 우리의 필요를 채워주시기 위해서
부당하다고 생각이 되어도
한 시간 일 한 사람에게 한 데나리온을 주십니다.
하지만 우리가 재물에 의지해서
스스로 하느님에게서 멀어지는 일은 없어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