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께 청하면 하느님께서 주실 것이라고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하지만 우리는 우리의 현실에서
청하는 것을 모두 받을 수 있는 것처럼 느끼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우리가 청하는 것보다
우리가 원하지 않는 것들,
시련, 고통, 이런 것들이 어 자주 우리를 찾아오는 것처럼 느낍니다.
더 나아가 오늘 복음의 마지막 부분을 읽어보면
좀 이상하다는 느낌을 받곤 합니다.
너희가 악해도 자녀들에게는 좋은 것을 줄 줄 알거든,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야 당신께 청하는 이들에게
얼마나 더 좋은 것을 주시겠느냐로 끝날 것 같지만,
복음은
성령을 얼마나 더 잘 주시겠느냐로 끝납니다.
'더 좋은 것을 주시는 것'이 아니라,
'성령을 더 잘 주시는 것'입니다.
이 말씀대로라면 결국 우리가 청해야 하는 것은
'더 좋은 것'이 아니라
'성령'입니다.
즉 우리가 성령을 청하지 않고
엉뚱한 것을 청하고 있기 때문에,
아니 더 나아가 우리가 청하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도
잘 모르고 청하고 있기 때문에,
우리가 받지 못하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렇다면 성령을 청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앞에서 이야기 했듯이
우리가 복음의 마지막에서 기대했던
'더 좋은 것'을 뜻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즉 성령을 받는다는 것,
하느님을 내 안에 모셔들인다는 것은,
그 어떤 것보다 더 좋은 것입니다.
여러 가지 의미가 있겠지만,
하느님께서 나를 사랑하시는 분이라면,
우리가 아버지라고 부르 수 있는 존재라면,
하느님과 함께 한다는 것은
항상 나를 사랑해 주는 애인과 함께 하는 것입니다.
나를 지지해 주고 인정해 주고
실수해도 나를 격려해 주는 존재가 늘 나와 함께 있다면,
더 바랄 것이 없을 것입니다.
그야말로 구름 위를 둥둥 떠다니는 것처럼
기쁨에 넘친 나날을 보낼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 나타난 하느님의 모습은
청하는 것을 들어주시는 자비의 아버지의 모습입니다.
그러한 하느님의 자비와 사랑이
늘 우리와 함께 할 것이라고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우리는 다른 그 어떤 것보다
하느님의 사랑을 청해야 할 것이고,
그렇게 성령을 청해야 합니다.
하느님의 사랑이 우리 각자 안에 머무는
기쁜 나날 되시기를 기도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