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확할 것은 많은데 일꾼은 적다. 그러니 수확할 밭의 주인님께
일꾼들을 보내 주십사고 청하여라.
“가거라. 나는 이제 양들을 이리 떼 가운데로 보내는 것처럼 너희를 보낸다.”
잘 아시다시피 오늘 복음은 다른 복음에는 없는 내용입니다.
열 두 사도의 파견 외에 루카복음은 <다른 제자 일흔두 명>을
파견하시는 내용을 더 집어넣은 것인데 제가 보기에
이것이 오늘 우리가 축일로 지내는 루카의 마음을 담은 것입니다.
루카는 수확할 것이 많은데 일꾼이 적다는
주님의 안타까운 마음을 전합니다.
“수확할 것은 많은데 일꾼은 적다.”
사실 우리 가운데 이런 안타까운 마음을 가진 사람이 얼마나 될까요?
이것은 제가 다른 사람을 비판하기 위해 하는 말이 아닙니다.
다만 저희 수도회 안에서나 재속 프란치스코회 안에서나
이런 안타까운 마음을 가진 사람이 너무도 적음에 제가 안타깝습니다.
지난 며칠 그리고 이번 금요일까지 중국에서 온 형제자매들을 동반하며
저는 한국의 교회와 수도생활과 재속 프란치스코 회를 소개하고 있는데
저는 중국 대륙을 생각할 때마다 주님과 루카의 안타까움이 있습니다.
중국에 수십억이 살고 있는데,
17개밖에 되지 않는 재속 프란치스코회를 전국적으로 설립하고
하나도 없는 2회 클라라 수녀원을 세워야 하는데,
정치적인 상황이 너무 안 좋고, 그래서 선교 상황도 안 좋으며,
그래서인지 선교를 나갔다가도 거의 대부분 실패하고 돌아오고
그래서인지 선교를 나가려는 사람도 별로 없는 것이 현실입니다.
오죽하면 제가 조금 더 젊었더라면,
제가 30살에 이런 주님과 루카의 마음을 가지고
선교의 눈을 가졌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생각도 하며
지금이라도 제가 가야 하는 것 아닌가 하는 마음을 갖기까지 합니다.
그래서 눈을 돌린 것이 한국에 와 있는 조선족과 중국인들입니다.
물론 다른 이주민들도 대상을 하지만 특히 조선족과 중국인이
불법 체류자 포함하여 거의 100만 명 정도 되니
이들을 특히 염두에 두고 선교를 하자는 거지요.
오늘 주님께서는 아주 강하게 말씀하십니다.
가거라!
그러므로 물론 중국까지 가야 하지만 중국 상황 탓에 못 갈 경우
탓만 하지 말고 이곳에 와 있는 사람들을 위해
해야 할 것을 하고 할 수 있는 것을 하자는 거지요.
중국까지 가야지만 가는 것이 아니라는 얘기입니다.
우리는 자기 여건에 맞게 누구든 찾아 가면 그것이 가는 겁니다.
온전히 선교사로 살겠다고 자원을 하고
멀리까지 가겠다는 특별성소의 선교사도 필요하지만
이것은 말 그대로 특별한 성소이고
우리도 모두 보편성소로서 선교사일 수 있다는 얘기입니다.
중요한 것은 나도 <다른 일흔두 명>에 포함된다는 의식이고,
나도 당신에 앞서 <가라고> 파견 받은 사람이라는 의식임을
새삼스럽게 깨닫고 깊이 깨닫는 오늘이 되시기를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