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는 주의하여라. 모든 탐욕을 경계하여라.
아무리 부유하더라도 사람의 생명은 그의 재산에 달려 있지 않다.”
사람의 생명이 재산에 달려 있지 않다고 할 때
이때의 생명이란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요?
오래 살고 일찍 죽고 하는 그런 길이의 생명을 말하는 것일까요, 아니면
이 세상에서의 생명과 구별되는 저 세상에서의 생명을 말하는 것일까요?
그것도 아니면 육신의 생명과 구별되는 영적인 생명을 말하는 것일까요?
주님께서 말씀하시는 생명은 적어도
지금 어느 재벌 회장처럼 돈으로 생명을 유지하거나
살아 있어도 산 것이 아니고 겨우 숨만 붙어 있는 그런 억지 생명을
뜻하는 것이 아님은 분명하고 주님이 사셨던 유대교의 사고방식에서
볼 때 종합적인 생명을 말씀하시는 거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제가 건강에 대해서 말할 때도 저는 종합적인 건강을 말하고
우리는 종합적으로 그리고 유기적으로 건강해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제 생각에 우리의 건강에는 4가지 차원이 있습니다.
-육신의 건강
-마음의 건강
-정신의 건강
-영 또는 영혼의 건강
건강하다는 것은 어느 한 건강을 얘기하는 것이 아니고
진정한 의미에서 건강은 이 네 가지가 유기적으로 작용하고
조화를 이루어 인간이 전체적으로 건강한 것을 일컫는 것이지요.
인간의 생명도 마찬가지가 아닐까요?
예를 들어 생명 의지는 없고 오히려 죽고 싶은 마음만 가득하면
육신 생명이 생명을 유지할 수 있겠으며 유지한다고 해도
그렇게 살아 있는 것을 살아 있는 거라고 할 수 있을까요?
정신과의 관계는 어떻고, 영과의 관계는 어떻습니까?
정신이 온전치 않고 영이 성령이 아니라 악령의 지배를 받으면
심신, 곧 마음과 몸이 어떻게 생기를 가지고 살아갈 수 있겠습니까?
아무튼 주님께서는 우리 인간이 하느님 안에서 살지 않고
재물 욕심으로 가득하여 살아가면 그 욕심으로 인해
생명은 점차 죽어 가게 됨을 말씀하십니다.
오늘 비유에서 주님께서는 하느님께서
욕심 부리는 부자의 생명을 거둬 가신다고 말씀하시는데
우리는 그것을 욕심을 부리는 부자가 괘씸하여 하느님 친히
그의 생명에 손을 대신다는 뜻으로 이해할 수도 있겠지만
욕심을 부리면 그 욕심 때문에 자신도 죽고 남도 죽게 되도록
하느님께서 그리 만드셨다는 뜻으로 이해할 수도 있을 겁니다.
실로 욕심은 생명을 죽이고 사랑은 생명을 살립니다.
욕심 때문에 남을 살해하고,
욕심의 좌절 때문에 자살을 하는 그런 극단적인 경우가 아니더라도
욕심은 필연적으로 불만과 분노를 낳기에 생기를 잃게 할 것입니다.
욕심은 생명을 낳는 사랑을 목조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사랑을 할 때 내 안에도 생명이 약동하고
다른 사람을 살린다는 것을 경험적으로 압니다.
남녀가 사랑을 하여 생명을 탄생케도 하고요.
하느님 사랑 안에 살 때에만
재물의 풍요와 만족이 주지 못하는 더 크고 완전한 만족을 살고
생명도 살 수 있음을 다시금 묵상하고 성찰하는 오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