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 32 주일의 주제는 지혜로서 1독서 지혜서는 이렇게 얘기합니다.
“지혜를 사랑하는 이들은 쉽게 알아보고 찾는 이들은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지혜는 자기를 갈망하는 이들에게 미리 다가가 자기를 알아보게 해 준다. ”
그리고 복음은 이렇게 얘기합니다.
“하늘나라는 저마다 등을 들고 신랑을 맞으러 나간 열 처녀에
비길 수 있을 것이다. 그 가운데 다섯은 어리석고 다섯은 슬기로웠다.”
지혜에는 여러 가지 지혜가 있습니다.
신 김치 먹는 법이나 콜라를 이용해 창을 닦거나 녹슨 볼트를 푸는 법을
아는 것과 같은 생활의 지혜라는 것이 있지요.
인터넷을 뒤지니 1300가지의 생활의 지혜 모음집까지 있더군요.
이런 생활의 지혜를 많이 알고 있으면
쉽게 생활의 문제를 해결하고 편리하게 살아갈 수 있겠지요.
이런 지혜보다 우리가 지녀야 할 더 중요한 지혜가 있습니다.
사리분별과 상황대처의 지혜입니다.
어리석은 사람은 사리분별과 판단이 안 되어
먼저 할 일과 나중 일이 뒤바뀌고 더 중요하고 덜 중요한 일,
더 가치 있고 덜 가치 있는 일이 뒤바뀝니다.
예를 들어 젊었을 때는 돈 버는 것이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하여
물불 가리지 않고 일을 하는데 그러다가 건강을 잃고 난 뒤에야
건강을 잃으면 아무리 돈이 많아도 소용없다는 것을,
건강이 그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것을 깨닫게 되지요.
그런가하면 저 같이 프란치스칸으로서 어리석은 짓을 하기도 합니다.
프란치스칸 가난이 아무리 중요해도 어디까지나 가난은
사랑을 위한 가난이고 형제애보다 더 중요한 가난이 아닌데
사랑보다 가난을 더 중시하여 어리석기 이를 데 없습니다.
그런데 오늘 독서와 복음이 말하는 지혜는 좀 특별합니다.
종말론적인 지혜와 인격적인 지혜에 대해 얘기합니다.
우리 인생에서 제일 중요한 것이 무엇일까요?
삶과 죽음과 영원이 아닐까요?
젊었을 때는 돈이 중요하고 연애가 중요하고,
나이를 먹으면 그런 것보다 건강이 중요한데
더 나이 먹어 죽게 되면 영원이 중요하겠지요.
그리고 영원을 살고자 한다면 하느님과의 관계가 중요하지 않겠습니까?
다시 말해서 이 세상에서도 사랑이 중요하고 인격적 관계가 중요하지만
하늘나라에서는 하느님 사랑이 중요하고 하느님과의 관계가 중요하겠지요.
죽음을 앞두고는 정말로 하느님과의 관계와 인격적인 사랑이 중요합니다.
어머니가 저에게만 말씀하셨을 것 같은데
저의 어머니는 생전에 몇 번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저의 아버지는 제가 두 살 때 저희 6남매를 남겨두고 돌아가셨습니다.
그때 저희 어머니도 건강이 아주 좋지 않으셨는데
저희 아버지는 자식 걱정도 없으신 듯,
6남매를 아내에게 남겨두고 가는 것이 미안하지도 않으신 듯
당신이 죽고 나면 당신을 위해 미사 100대를 드려달라고 하셨답니다.
이 얘기를 여러 번 하시며 어머니는 아들이 사제가 되었으니
이런 아버지의 바람이 이루어졌다고 말씀하시는 거였습니다.
이 얘기를 들으면서 저는 아버지가 무지 이기적이라고 생각했는데
나이 먹어 지금 생각하면 지금 여기서 살 때는 지금 여기서 열심히
사랑해야겠지만 천국 길 떠날 때는 이런 사랑 다 놓고 떠나야겠지요.
이것이 영원을 위한 종말론적이고 인격적인 지혜입니다.
이때는 아무리 중요한 것도 중요한 것이 아니고 그래서 다 놔야 합니다.
오직 죽음과 함께 영원으로 오시는 주님을 슬기로운 처녀처럼
사랑과 갈망의 기름을 가득 채운 등을 들고 맞으러 나가야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