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가난한 과부가 다른 모든 사람보다 더 많이 넣었다.”
오늘 복음은 아주 짧은 얘기이고
주님께서 하시고자 하시는 말씀도 명확합니다.
부자의 봉헌이 과부의 봉헌보다 액수로는 크지만
정성이나 사랑으로 치면 과부가 더 크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오늘은 이런 관점에서 묵상하지 않고
주님께서 과부의 사랑을 높이 평가해주심에 대해 묵상코자 합니다.
과부는 정말 가진 것이 없었습니다.
그렇지만 하느님께 자기도 봉헌하고 싶었습니다.
만일 다른 사람 눈치를 보며 봉헌하는 거였다면
그 작은 액수는 부끄러워 내지도 못했을 겁니다.
그러나 과부는 정말 하느님께 봉헌하고 싶었기에
작은 액수지만 그것을 상관치 않고 봉헌했습니다.
헌데 주님은 과부의 이런 봉헌을 눈여겨보십니다.
우리 같으면 눈길이 어디로 가겠습니까?
잘난 사람과 그들의 행동에 눈길이 가는 것이 보통이지요.
허나 주님은 초라한 과부와 그의 행동에도 눈길을 주십니다.
이런 주님의 눈길이 고맙기도 하고 두렵기도 하며 부끄럽게도 합니다.
그렇습니다. 이런 눈길이 내가 과부인 듯 고맙습니다.
주님마저 여느 사람들처럼 보잘것없다고 우리를 봐주지 않으시면
우리는 얼마나 비참하고 슬프겠습니까? 그런데
주님이 그렇게 봐주시기에 보잘것없는 우리도 기를 펼 수 있으며
아버지 하느님도 진정 경외하고 사랑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다른 한 편 주님의 이런 눈길이 두렵기도 합니다.
나를 무시하지 않고 나에게 눈길을 주시는 것은 고마운 일이나
나의 속을 꿰뚫어 보시고 나의 허위를 다 아시는 것은 두려운 일이지요.
그러나 이런 두려움이 나쁜 것만은 아닙니다.
간이 밖으로 나와서 두려워할 줄 모르거나
마음이 너무도 그악하여 눈에 뵈는 게 없고 두려워할 줄 모르는 것보다는
이런 두려움이 하느님 앞에 있는 사람의 두려움이고,
하느님 앞에서 겸손하게 하는 두려움이기에 좋은 면도 있습니다.
셋째로 과부를 따듯하게 보시는 주님의 눈길은 우리를 부끄럽게도 합니다.
그것은 말할 것도 없이 우리의 눈길이 주님의 눈길과 같지 않기 때문이지요.
참으로 부끄럽게도 우리의 눈길은 저절로 유명인에게로 향하고
사람은 보지 못하고 그가 가진 것만 보며
속은 보지 못하고 겉만 보니 참으로 허영의 눈길입니다.
그러니 우리 눈길의 정화도 필요합니다.
탐욕의 눈길도 정화가 필요하고,
쾌락의 눈길도 정화가 필요하지만
진정 허영의 눈길도 정화가 필요함을 성찰하고 반성하는 오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