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만군의 주님께서는 이 산 위에서 모든 민족들을 위하여
살진 음식과 잘 익은 술로 잔치를 베푸시리라.”(이사 25,6)
오늘 독서와 복음은 판박이입니다.
산위에서 온갖 치유가 이뤄지고 배불리 먹는 잔치가 벌어집니다.
이렇게 판박이 얘기를 대림절에 들려줌으로써 우리의 전례는
오래 전 이사야가 예언한 메시아 시대의 모습이
메시아이신 예수 그리스도로 인해 성취되었음을 얘기하는 거지요.
그런데 왜 이런 치유와 잔치가 하필이면 산 위에서 벌어집니까?
오늘 복음을 보면 여러 장애가 있는 사람들이 열거되는데
그중에는 다리 저는 이와 눈먼 이도 있습니다.
이들을 평지에서 고쳐주시면 오기 편했을 텐데
왜 굳이 산에서 고쳐주시어 힘들게 하셨을까요?
치유를 받고자 한다면 그런 힘든 것 정도는
감수할 열망과 의지가 있어야 한다는 뜻이었을까요?
그런 뜻이 없지 않고 실제로 치유가 일어나려면
치유자의 능력과 사랑도 중요하지만
치유 받는 자의 치유 의지와 열망도 필요하지요.
그래야 치유자에 대한 믿음을 갖게 될 것이고,
치유에 온 정성을 다 기울일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잘 아시다시피 산이란 하느님이 계신 곳이고
그러므로 산위에서 뭘 하신 것은 하느님 계신 곳으로 초대하심입니다.
주님께서는 사실 장애인들이 장애를 가지고
하느님이 계신 산에 오르라고 초대하십니다.
장애가 없었다면 어쩌면 하느님 계신 산에 오르지 않고
이 세상에서 자기 하고 싶은 것 맘껏 하며 지냈을 텐데
장애가 있었기에 하느님을 찾았고
장애를 가지고 하느님 계신 곳으로 올라가는 겁니다.
그런데 우리는 오늘 복음에서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장애인들이 하느님이 계신 산으로 오른 것은 스스로 오른 것이 아니라
많은 군중이 그들을 데리고 갔기에 올라갈 수 있었다는 점입니다.
“예수께서 산에 오르시어 거기에 자리를 잡고 앉으셨다.
그러자 많은 군중이 다리 저는 이들과 눈먼 이들과... 그리고
또 다른 많은 이들을 데리고 예수님께 다가왔다.”
그러니까 주님께서 하느님이 계신 산으로 올라가심은
우리가 하느님 계신 곳으로 올라갈 때 나만 올라가지 말고
스스로 하느님 계신 곳에 올라갈 수 없는 사람들도 동반하라는 뜻입니다.
그리고 이 사실은 이런 뜻일 수도 있습니다.
하느님 계신 곳은 홀로 오를 수가 없다.
장애인을 동반하지 않고 홀로 오른다면
왜 홀로 올라왔냐며 주님께서 돌려보내실 수도 있다.
더 나아가 이런 뜻일 수도 있습니다.
오늘 이사야서는 만군의 주님께서 산 위에서 잔치를 베푸실 거라 했지만
하느님 나라의 잔치란 하느님께서 다 베푸시는 잔치가 아니라
우리가 가져온 것을 나눌 때 주님이 그 나눔을 풍성해지게 하는 잔치다.
이것이 사랑의 기적이고 사랑의 잔치입니다.
주님의 헌신적인 사랑이 사람들의 사랑에 불을 질러 사랑을 풍성케 하고
이제 그들이 스스로 가진 것을 내어놓고 나눔으로 빵을 풍성케 하신 겁니다.
그래서 밑에서는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 산위에서는 일어난 것입니다.
오늘 산위의 주님께서 우리도 이러하도록 산위로 오르라 초대하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