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의를 지키는 의로운 겨레가 들어가게 너희는 성문들을 열어라.”
“나에게 ‘주님, 주님!’ 한다고 모두 하늘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다.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을 실행하는 이라야 들어간다.
오늘 독서와 복음의 공통어는 <들어간다.>입니다.
그래서 오늘은 들어감을 주제어로 선택했는데
이 들어가는 것을 주제어로 선택한 이유가 어제
저희 새 공동체의 막내 형제가 회사에 들어갔기 때문입니다.
이번 관구회의와 인사이동으로 저와 두 형제는
새로운 공동체를 만들어나가게 되었습니다.
저희가 이름붙이기를 <프란치스칸 초기 은사 공동체>인데
프란치스칸 은사를 초기 형제들이 살았던 것처럼 살아보자,
아니 시늉이라도 해보자는 뜻이 들어있습니다.
그래서 셋 다 육체노동을 하는 직업을 갖기로 했는데
제일 막내 형제가 역시 제일 먼저 일자리를 잡은 것입니다.
어제 마을버스 회사에 면접을 하고 그 자리에서 취직이 된 겁니다.
면접을 마치고 돌아온 형제가 그 회사에 들어가게 됐다고 할 때
마치 제가 들어간 양 박수까지 치며 정말로 기뻐하고 축하를 했습니다.
그래서 오늘아침 들어간다는 말에 저의 생각이 머물렀던 것이고
이어서 그러면 나는 어디에 들어가고 싶은지 생각게 되었습니다.
버스회사에 들어가는 것만큼이라도 하늘나라에 들어가고 싶은가, 나는?
나의 삶과 행위는 하늘나라에 들어가기 위한 삶이고 행위인가?
현재 우리가 바라는 것이 과연 종말론적이고 천국지향적인 것인지
제가 가끔 테스트하는 간단한 방법이 있습니다.
먼저 천국에 가고 싶은지 묻습니다.
그러면 모든 사람이 다 천국에 가고 싶다고 답합니다.
다음으로 그러면 지금 당장 가고 싶은지 묻습니다.
이 물음에는 애석하게도 소수만 가고 싶다고 답합니다.
그렇다면 천국에 가고 싶다고 한 것은 정말로 가고 싶거나
지금 당장 가고 싶다는 뜻이 아니라 죽게 되면
지옥보다는 천국을 가고 싶다는 뜻이 되겠지요.
그리고 이것은 천국보다는 이 세상을 사는 것이 좋다는 뜻이고
그러니 지금 사는 것도 천국을 위한 삶을 사는 것이 아니라
지금 내가 살고 싶은 대로 사는 삶임을 보여주는 것이지요.
그렇습니다. 천국에 들어가는 것은 죽음이 가까이 왔을 때나
생각하고 준비할 문제지 한창 또는 아직 이 세상을 살아야 하는 내게는
아직 멀리 있는 얘기일 뿐 회사에 들어가는 것이 더 중요하고 급합니다.
이런 저에 대해서 묵상을 하면서 종말론적으로 살아가지 못하는 저를
나무라는 마음이 없지 않지만 그러나 어쩌면 당연하다는 생각도 합니다.
아직 이 세상을 더 살아야 하고 열심히 살아야 할 우리는
내가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도 중요하지만
하느님 나라를 이 세상에 임하게 하는 것이 어쩌면 더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아버지의 나라가 오시며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소서.”하고 매일 같이 기도하고 있지 않습니까?
그러니 우리는 내가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려고 노력하는 것만큼이나
하느님 나라가 오시도록 특히 이 대림시기에 노력해야 하겠지요.
그러나 내가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이든
하느님 나라가 이 땅에 오시게 하는 것이든 우리가 해야 할 것은 같습니다.
하느님의 뜻을 실천하는 것, 이것이
내가 하늘나라에 들어가는 길이요 하늘나라가 이 땅에 오게 하는 길이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