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에게는 하느님 나라의 신비가 주어졌지만,
저 바깥사람들에게는 모든 것이 그저 비유로만 다가간다.
보고 또 보아도 알아보지 못하고 듣고 또 들어도 깨닫지 못하여
저들이 돌아와 용서받는 일이 없게 하려는 것이다.”
이 말씀은 참으로 알아듣기 쉽지 않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사람을 차별하신다는 뜻인지,
하느님께서는 용서하시지 않겠다는 뜻인지.
하느님께서 못 알아듣게 하신 건지 인간이 못 알아듣는 건지.
그러므로 오늘 말씀에서 관건은 <저 바깥사람>인데
<저 바깥사람>은 도대체 누구를 말하는 걸까요?
스스로 바깥으로 나간 사람일까요, 아니면 바깥으로 내쫓긴 사람일까요?
오늘 복음을 보면 주님께서 비유를 들려주신 다음 혼자 계시는데
비유의 뜻을 물으려고 12 제자와 다른 제자들이 찾아옵니다.
그리고 이 제자들에게는 <너희>라고 하시고,
다른 사람들을 <저 바깥사람>이라고 하십니다.
그러니까 <저 바깥사람>은 제자들 공동체 밖의 사람들입니다.
그러니까 <저 바깥사람>도 두 가지로 생각할 수 있을 겁니다.
우선 계시의 빛을 받는 사람과 그 빛을 받지 못하는 사람을
가를 수 있겠습니다.
계시의 빛을 받으면 볼 수 있고 그래서 알 수 있지만
계시의 빛을 받지 않으면 볼 수도 알 수도 없게 되는데
그 빛을 받는 사람과 받지 않는 사람이 있다는 겁니다.
문제는 계시의 빛이 누구에게는 비추고 누구에는 비추지 않느냐
아니면 그 빛을 원하는 사람과 거부하는 사람이 있느냐의 문제입니다.
다시 말해서 주님이 우리 중 누구는 배제하고 누구는 빛을 주느냐,
아니면 사람이 누구는 주님의 빛을 원하고 누구는 원치 않느냐 문제입니다.
그런데 복음 여러 곳에서 주님께서는 모두에게 빛을 비추신다고 하셨지요.
하느님께서는 선한 사람에게나 악한 사람에게나 똑같이 빛과 비를
주신다고 하셨고, 성모님의 주님 봉헌의 때에 시메온은 이렇게 노래하지요.
“이교 백성들에게는 계시의 빛이시오,
주의 백성 이스라엘에게는 영광이 되는 구원을 보았나이다.”
그러므로 주님은 대명천지大明天地의 그 계시의 빛이십니다.
천지를 다루 다 비추는, 한 곳도 미치지 않는 곳 없이 다 비추는
그런 대단한 계시의 빛이고, 누구도 배제 않는 공평한 사랑의 빛이십니다.
문제는 주님은 배제하지 않으시지만
스스로 빛을 찾아오지 않아 어두움 가운데 있는 사람이 있는 겁니다.
자기 죄 숨기려고 빛을 피하다보니 계시의 빛을 받지 못하는 사람이 있고,
더 나쁜 것이지만 계시의 빛이 필요 없다고,
다시 말해서 빛이 없어도 자기는 볼 수 있다는 사람이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계시의 빛을 받지 않으면 볼 수 없는 존재입니다.
칠흑 같은 밤에는 아무리 눈을 부릅떠도 우리는 볼 수 없지요.
빛이 있어도 눈을 감으면 못 보기도 하지만
눈을 떠도 빛이 없으면 못 보기도 한다는 얘깁니다.
그러므로 하느님께서는 신비를 못 보도록 애초부터 배제하지는 않으셨지만
주님의 계시의 빛을 받지 않는 사람은 못 보도록 배제하신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제자들은 주님께로 나아왔기에 계시의 빛을 받아
하느님 나라의 신비를 보고 알게 되었습니다.
하느님 나라에 대한 비유를 말씀하시는데 그 비유의 뜻이 무엇일까
궁금하고 알고 싶은 사람은 계시의 빛이신 주님께 와서 알게 되지만
비유를 듣고도 전혀 그 뜻이 궁금하지도 알고 싶지도 않은 사람은
계시의 빛이신 주님께 오지 않아 볼 수도 알 수도 없는 거지요.
오늘의 우리도 제자들처럼 비유를 듣고
그 비유의 뜻을 알고자 빛이신 주님께로 나아가는 우리가 되어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