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유전人生流轉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인생이 한결 같지 않다는 뜻이 들어있습니다.
돌고 도는 인생이라고도 하고 그래서 어떤 유행가에서는
‘돌고 도는 물레방아 인생’이라고 노래하기도 합니다.
인생유전에는 비슷하지만 조금 다른 뜻도 있습니다.
인생이 돌고 돌아 처지가 바뀐 것을 얘기하기도 합니다.
주인댁 도련님은 고생 모르고 살다가 삶의 거센 풍파에
떠내려가기도 하고 뒤집히기도 하여 비참해진 반면
주인댁 머슴의 아들은 얼릴 적 고생이 오히려 그를
단단하게 만들어 성공을 하였다는 그런 얘기입니다.
이렇게 인생의 전과 후가 뒤바뀌는 것을
성공과 실패의 관점에서 볼 수도 있지만
노숙과 노추의 관점에서 볼 수도 있습니다.
사실 많은 사람들은 나이 먹을수록 노숙老熟하고 원숙圓熟해집니다.
젊어서는 욕망이 들끓고 인생의 갈 길을 찾지 못해 방황을 하다가
나이 먹어 정신을 차리고 소박하지만 자기 삶을 충실히 살고
작은 사랑을 실천하며 이웃과도 원만하게 지내게 되는 것이지요.
그런데 요즘 볼 수 있듯이 정말 안타깝게도 노추老醜의 경우도 많습니다.
젊었을 때는 꿈과 이상이 있었고 그래서 그것을 향해 매진하여
어느 정도 성공을 거두고 유명해졌으며 위치를 갖게 되었습니다.
문제는 나이 먹으면서 이상은 사라지고 욕망만 남아
욕망이 노망이 되고 명예가 권력이 되면서 추해지는 것입니다.
또 다른 관점도 있습니다.
선행과 악행의 관점입니다.
젊었을 때는 한 성깔이 있어 악행을 저질렀지만 여자를 잘 만났거나
스승을 잘 만나 망나니 같은 사람이 정말 착실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반대로 중 고등학교 다닐 때까지는 정말 착하고 모범생이었는데
사실은 줏대가 없어서 착한 것이었기에 살벌한 현실을 만나면서
살아남기 위해 정말 악랄한 사람으로 바뀐 인생도 있습니다.
아무튼 우리의 인생은 끝이 중요합니다.
인생에 있어서 남는 것은 마지막이 남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인생이 망했다 하는 것은 젊었을 때 잘못 산 걸 두고 하는 말이 아니고
젊었을 때 잘 살다가 늙어 또는 마지막에 잘못되었을 때 하는 말이지요.
그런데 우리에게는 더 중요한 관점이 있습니다.
회개와 타락의 관점이라고 할 수 있는데, 그런데 우리에게는
이 회개라는 것이 못된 성격 또는 습관을 바꾸고,
늘 남에게 못되게 굴던 사람이 좋은 사람이 되는,
다시 말해서 개과천선改過遷善의 정도가 아닙니다.
우리의 회개란 하느님께로 돌아섬입니다.
하느님 모르고 그래서 하느님 없이 살다가
하느님을 만나 새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악행이 하느님을 모를 때의 악행이었기에
선행도 하느님을 알고 난 뒤의
하느님께 대한 사랑과 성실의 선행입니다.
나이를 먹어갈수록 하느님을 더 사랑합니까, 세상을 더 사랑합니까?
내 인생의 마지막에 무엇이 남을 것 같습니까?
선행이 남겠습니까, 악행이 남겠습니까?
하느님이 남겠습니까, 형해形骸만 남겠습니까?
이것을 묵상케 하는 오늘 독서입니다.
“내가 정말 기뻐하는 것이 악인의 죽음이겠느냐?
악인이 자기가 걸어온 길을 버리고 돌아서서 사는 것이 아니겠느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