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는 위로부터 태어나야 한다.
바람은 불고 싶은 데로 분다.
영에서 태어난 이도 다 이와 같다.”
오늘 주님께서는 우리가 위로부터 태어나야 한다고 하시면서
바로 이어서 바람은 불고 싶은 데로 분다고 하시고,
그리고 또 이어서 영에서 태어난 이도 이와 같다고 하십니다.
그러니까 위로부터 태어난다는 것은 영에서 태어나는 것이고,
영에서 태어나면 불고 싶은 데로 부는 바람과 같이 된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니 우리가 불고 싶은 대로 부는 바람처럼 영의 존재가 되려면
위로 올라가야 한다는 말씀도 되겠습니다.
그리고 위로 올라가야 한다는 것은 아래로부터 올라가는 것이고,
아래로부터 올라가는 것은 아래를 떠나는 것이기도 하고,
산 아래 마을을 떠나 산 위의 마을로 올라감과 같습니다.
그런데 우리말에는 ‘인기몰이’니 ‘바람몰이’니 하는 말도 있지요.
이런 바람은 산 아래 마을, 곧 세상에서 부는 바람으로서
하느님에게서 비롯된 성령의 바람이 아니라 인위적인 바람,
곧 인간에게서 비롯되고 특히 나에게서 비롯된 바람입니다.
그러면 산 아래에서 부는 바람, 세상에서 부는 인위적인 바람이
산 위로 올라가 성령의 바람이 될 수 있을까요?
상승기류라는 것이 있다는데 상승기류를 타면
인위적인 바람이 성령의 바람이 될 수 있겠느냐는 말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미안하지만 아니올시다.’입니다.
그렇게 되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세상에서 인기 끄는 사람이 천국에서도 인기를 끌고
무엇보다도 하느님의 사랑을 받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허나 그것은 절대로 그렇게 될 수 없는데
세상에서 인기 끄는 사람을 하느님이 질투하여 그리 만드신 것이 아니라
세상에서 인기 끌려는 사람이 스스로 세상에 매여 그리되는 것입니다.
자승자박自繩自縛이라는 말이 딱 그 뜻입니다.
스스로 자기를 묶어 속박되는 것이지요.
세상 인기라는 것이 두 가지 속성이 있습니다.
인기를 탐하면 사람에게 매여 하늘로 오를 수 없다는 것이 하나이고,
그 인기라는 것도 영원치 않아 허무로 끝난다는 것이 다른 하나입니다.
우리는 눈치를 보면 안 된다고 합니다.
반대로 눈치가 있거나 빨라야 한다고 하고
눈치코치 없으면 나무라기도 합니다.
눈치를 보는 것은 일종의 두려움이고 매임/속박이지만
눈치가 있는 것은 일종의 사랑이고 고려/배려이지요.
눈치를 보는 것은 사랑을 받고자 함이요, 못 받을까 두려워함이지만
눈치가 있는 것은 남의 상태와 필요를 알아채는 사랑이요, 배려지요.
그런데 인기를 탐하는 것은 인간의 사랑을 받고자 함이고,
그래서 인간에게 매여 하느님께 올라갈 수 없습니다.
인기란 사람 손에 잡혀있는 풍선과 같아서
사람에게서 놓이거나 풀려나지 않으면 하늘로 오를 수 없습니다.
그러니 우리의 사랑이 인기처럼 사람 손에 매여 있어서는 안 되겠지요.
그러므로 우리의 사랑이 하늘로 오를 수 있도록 자유로워지려면
인기와 인간의 사랑에 매이지 말아야 하는데
스스로 벗어나지 못하면 그 종말은 허무입니다.
인기 연예인이 어느 날 자살을 하곤 하는데 이 허무의 결과입니다.
인기가 영원하지 않아서, 다시 말해서
인간의 사랑이 영원하지 않아 그렇기도 하지만
사랑이 아닌 욕망은 타고 나면 언제나 허무라는 재를 남기기 때문이지요.
그러니 사랑, 그것도 욕망이 죽고 성령으로 다시 태어난 사랑만이
자유로이 하늘과 땅을 넘나드는 바람처럼 자유로움을 묵상하는 오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