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착한 목자다.
나는 내 양들을 알고 내 양들은 나를 안다.
착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자기 목숨을 내놓는다.”
오늘 주님께서는 아주 분명하게 그리고 단호하게 말씀하십니다.
당신이 착한 목자라고,
이에 저는 주님이 착한 목자이신가? 그러면 나는 뭐지? 누구지?
주님이 착한 목자라면 나는 착한 양인가? 하고 생각해봤습니다.
먼저 주님은 착한 목자이신지 생각해봤는데
성부의 뜻을 충실히 따르는 주님은 착한 목자이심에 틀림없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착한 목자이실 뿐 아니라 좋은 목자이시어야 하고,
무엇보다도 내게 좋은 목자 그래서 나의 목자가 되셔야 합니다.
그렇다면 착한 목자일 뿐 아니라 좋은 목자라면 어떤 목자인 것입니까?
우선 도둑이나 삯꾼과 달리 양들을 소중히 여기는 존재입니다.
사람들은 자기들의 좋고 싫음의 기준으로 또는 필요의 기준으로
나를 싫다고, 필요 없다고 하고 그래서 버려버리기도 하지만
주님만은 나를 한 존재로 소중히 여기시고
소유의 대상이 아니라 당신 사랑의 대상으로 여겨주시는 분입니다.
그래서 오늘 1독서와 화답송은 사람들이 쓸데없다고 버린 돌을
주님께서는 모퉁이의 머릿돌로 삼으신다고 노래하지요.
두 번째로 좋은 목자란 양들을 잘 아는 존재입니다.
요한복음에 안다는 것은 사랑한다는 것이며 그래서
잘 안다는 것은 사랑으로 아는 것을 뜻합니다.
그래서 나의 죄와 잘못을 샅샅이 아시고 약점도 샅샅이 아시지만
나의 약함과 아픔과 처지를 더 잘 아시고 나의 필요도 잘 아시기에
단죄와 벌이 앞서시는 것이 아니라 보살핌이 늘 앞서시는 주님이십니다.
세 번째로 착한 목자란 양들을 위해 목숨을 바치는 존재입니다.
양들이 죽게 되거나 위험에 빠졌을 때 목숨을 바쳐 구하는 존재입니다.
도둑은 양들을 위험에서 구하기는커녕 팔아넘기고,
삯꾼은 팔아넘기지는 않지만 양들이 위험에 처해도 무책임하게 도망치지요.
그러나 착한 목자는 주인의 뜻에 따라 양들을 위해 자신목숨을 바칩니다.
그렇다면 이런 착한 목자를 가진 나는 어떤 양인가? 어떤 양이어야 하나?
오늘 주님께서는 착한 목자의 착한 양들은 목자를 안다고 하십니다.
여기서도 아는 것은 사랑으로 아는 것인데
양들이 목자를 사랑으로 아는 것은 목자가 양들을 아는 것과는 다릅니다.
우선 나의 목자가 얼마나 좋은 목자인지를 잘 아는 것입니다.
표현을 달리 하면 알아드리는 것입니다.
주님이 얼마나 좋으신지 너희는 맛보고 깨달으라고 시편이 노래하는데
주님의 그 좋으심을 맛보고 한껏 누리고 마음으로 감사드리는 것입니다.
다음으로 착한 양은 목자를 잘 따릅니다.
양들을 살리고 잘 살게 하려는 착한 목자의 좋은 뜻을 잘 아는 양이라면
목자의 속을 썩이지 않고 그 뜻을 잘 따르고, 그 인도를 잘 따를 겁니다.
목자가 인도한 여기의 풀보다 저기의 풀이 더 맛있다고 멋대로 판단하고,
그래서 무리를 이탈하여 길 잃은 양이 되지 않는 것이고,
쓸데없는 세속 호기심에 이끌려 길 잃은 양이 되지 않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는 생각해볼 것이 하나 더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느님과 우리 인간 사이에서
아버지 하느님께는 착한 목자이시고 우리에게는 좋은 목자가 되신 것처럼
우리도 주님께는 착한 양이 되어야겠지만
다른 양들에게는 좋은 목자가 되어야 한다는 점입니다.
착한 목자의 뒤를 잘 따른다는 것은 우리도 착한 목자가 되는 겁니다.
이에 대해 프란치스코는 이렇게 얘기하며 우리에게 권고합니다.
“우리 모두 당신 양들을 속량하기 위해 십자가의 수난을 견디어 내신
착한 목자를 주의 깊게 바라봅시다. 주님의 양들은 고난과 박해,..유혹 등
모든 점에서 주님을 따랐고 그리하여 주님에게서 영원한 생명을 얻었습니다.
그러므로 성인들은 이렇게 업적을 이루었는데 우리는 그저 이야기만 하고,,,
영광받기만 원하니 이것은 하느님의 종들인 우리로서 부끄러운 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