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가 지금은 근심에 싸여 있다.
그러나 내가 너희를 다시 보게 되면 너희 마음이 기뻐할 것이고,
그 기쁨을 아무도 너희에게서 빼앗지 못할 것이다.”
복음에서 주님께서는 아무에게도 뺏기지 않는 기쁨에 대해 말씀하시는데
그러니 우리는 자연스레 뺏기는 기쁨과 뺏기지 않는 기쁨에 대해 생각하고,
또 기쁨에도 여러 차원이 있음을 생각하게 됩니다.
기쁨이란 원하는 것 그래서 목표한 것을 얻거나 이뤘을 때의 만족감이지요.
그런데 예를 들어 일확천금을 그렇게 원해 로또를 오랫동안 사 모았고
마침내 로또에 당첨되었다면 그 기쁨이 얼마나 짜릿하고 크겠습니까?
그런데 우리가 불을 보듯 뻔하게 아는 것은 이런 기쁨이
순간적으로는 대단하지만 너무 낮은 차원의 기쁨이고
더 큰 문제는 금세 뺏기거나 사라지는 기쁨이라는 점이지요.
그러면 이런 기쁨 말고 어떤 기쁨들이 더 있겠습니까?
이런 기쁨보다 그래도 한 단계 나은 기쁨으로 집을 사든지
좋은 대학이나 기업에 취직을 하는 기쁨도 생각할 수 있고,
선거나 전투나 갖가지 경쟁에서 이긴 승리의 기쁨도 있고
오랜 공부와 연구 끝에 신기술을 발견한 기쁨도 생각할 수 있겠습니다.
그런데 이런 기쁨들이 아무리 크고 값지다 해도
제 생각에 깨달음을 얻는 기쁨만은 못할 것입니다.
사실 저의 인생을 놓고 볼 때 깨달음이 얼마나 중요하냐 하면 제 인생을
깨닫기 전의 인생과 깨달은 다음의 인생으로 구분할 수 있을 정도이지요.
왜 살아야 하는지 인생의 의미를 몰랐을 때 저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었고
그래서 전에 여러 번 말씀드린 대로 저는 오랫동안 방황을 하다가
왜 사는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와 같은 인생의 진리를 깨달음으로써
이제 의미들을 찾는 기쁨과 의미 있는 일들을 하는 기쁨을 살게 되었지요.
그리고 이 깨달음에는 앞서 우리가 얻었다고 그리 좋아했던 기쁨들이
영원하지 않다는 깨달음도 있고 또 일의 성취적 기쁨보다는
인격적인 만남의 기쁨이 더 의미 있는 기쁨이라는 깨달음도 있지요.
제가 가까이 아는 한 분에게 있었던 일입니다.
사업을 하는 그분에게 딸은 여럿이지만 아들이 없었는데 또 임신을 하였고,
그래서 농담반 진담반으로 사업과 아들 중 하나를 선택하라면 뭘 선택할지
물었을 때 그분은 아들을 선택하겠노라고 했고, 말이 씨가 되었는지
아들을 얻은 그 해에 그분은 사업이 망했다고 합니다.
다시 그분에게 이번에는 반대로 지금 아들을 잃고 사업을 성공하는 것 중에
하나를 선택하라고 한다면 그분이 사업의 성공을 바라시겠습니까?
절대 그럴 리 없을 거고 이렇게 일의 성취의 기쁨보다
인격적인 만남의 기쁨이 훨씬 가치 있는 것이지요.
그런데 기치 있는 이런 인격적인 기쁨, 사랑의 기쁨에도
친구를 얻는 기쁨,
애인을 얻는 기쁨,
자녀를 얻는 기쁨,
동지나 스승을 얻는 기쁨과 같이 참으로 여러 가지 기쁨이 있는데
이 기쁨들이 참으로 가치가 있는 것은 분명하지만
이 기쁨들이 모두 뺏기지 않는 영원한 기쁨인 것도 맞는 말입니까?
앞에서 깨달음의 기쁨이 중요하다고 했고,
이제 인격적인 기쁨이 성취의 기쁨보다 가치 있지만
어떤 것이 뺏기지 않는 영원한 기쁨이냐가 중요한 문제입니다.
우리는 이미 답을 깨달아 알고 있습니다.
부모도 친구도 떠나거나 잃을 수 있고
애인도 자녀도 언젠가는 떠날 수 있지만
뺏기지 않고 영원한 사랑은 하느님뿐이라는 것 말입니다.
그제 봤듯이 하느님이 모든 진리이시며
하느님만이 모든 의미들을 의미 있게 하시는 분이라는 것을 깨달은 기쁨,
많은 것을 잃었지만 그것들을 잃었기 때문에 하느님의 사랑을 얻은 기쁨,
이 뺏기지 않는 영원한 기쁨을 사랑하고 추구하는 우리가 되어야겠습니다.
제 인생에서도 깨달음의 기쁨을 찾아내기를 이제라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