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연중 제 10 주일은 싸움, 전쟁에 대해 얘기합니다.
창세기는 뱀과 하와의 후손 사이에 싸움이 계속될 것을 예고하고,
그 예고대로 오늘 복음에서는 주님이 악령과의 전투를 벌이십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인간이 살다보면 누구나 싸우게 되는데
다만 이전투구泥田鬪狗, 곧 개들이 진흙 밭에서 싸우듯 싸우느냐
오늘 복음의 주님처럼 영적인 싸움을 하느냐의 차이가 있을 뿐입니다.
그러므로 분명해집니다. 누구나 싸우게 되지만
우리는 이전투구와 같은 싸움은 하지 말아야 하고,
영적인 전투는 주님처럼 적극적으로 해야 합니다.
우선 하지 말아야 할 싸움, 이전투구와 같은 싸움에 대해서 보겠습니다.
이 싸움은 욕심의 싸움, 증오의 싸움이고 그래서 살육의 싸움이고
인간존엄성이라는 것은 없고 개처럼 죽기 살기로,
더 정확하게 얘기하면 너 죽고 나 살기 위한 싸움이며,
당연히 이 싸움에 하느님은 계시지 않습니다.
명분싸움이나 이념전쟁이나 종교전쟁도 있습니다.
자기 욕심을 차리기 위해 남을 죽이는 것보다는 고상한 듯 보이지만
명분이나 이념이나 종교로 자기를 포장하는 것일 뿐
자기를 고집하는 면에서는 마찬가지거나 어쩌면 더 자기중심적이고
하느님을 믿는 자들의 종교 전쟁인 경우에도 거기에 하느님은 안 계십니다.
이렇게 얘기를 하면 종교를 빙자하여 전쟁을 벌이고
순교까지 한다고 생각하는 자들은 펄쩍 뛸 것입니다.
자기들은 지금 하느님을 위해 죽는 거라고 말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하느님을 위해 죽는 것이 아니고
자기가 만들어낸 하느님 곧, 자기의 복제품이요 우상인
하느님을 위해 죽는 것이고, 결국 자기를 고집하다 죽는 것입니다.
싸우게 하는 하느님은 하느님이 아니기 때문이고,
하느님이 아닌 이유는 사랑의 하느님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존재하게 하고 살게 하는 하느님만이 사랑의 하느님이고
참 하느님이시기에 우리는 이런 하느님을 믿어야 합니다.
그렇다면 예수님께서 벌이신 싸움은 싸움이 아니고 뭡니까?
물론 싸움입니다. 그러나 죽이려는 싸움이 아니라 살리려는 싸움이고,
믿음의 싸움이고 희망의 싸움이며 사랑의 싸움입니다.
예를 들어서 사람을 살리기 위해 폭풍우와 악전고투惡戰苦鬪한다고 합니다.
마찬가지로 악령과 악의 세력들로부터 사람을 살리기 위해 악전고투합니다.
이 영적인 전쟁은 우선 악령과 악의 세력과 싸웁니다.
주님께서는 공생활 시작부터 광야에서 악령과 대결하시고
공생활 내내 그리고 십자가 위에서 돌아가실 때까지 대결하셨습니다.
그리고 오늘 복음에서는 적대자들로부터 그리고 심지어는 친척들로부터도
미쳤다거나 악령의 하수인이라는 모함과 공격을 받습니다.
역사적으로 볼 때 적대자들 특히 타락한 종교적 적대자들이
흔히 하느님의 사람을 공격하는 방식이 바로 이런 식입니다.
그들로 인하여 죄의 노예가 되고 억압을 받으며 죽임을 당하는 사람을
그들로부터 풀어내어주고 살려주려 하기에 그들은 하느님의 사람들을 되레
적대자로 몰며 공격하는데 하느님의 사람은 이런 공격에 물러서지 않습니다.
요즘 지방선거를 보면 이기기 위해 인정사정 볼 것 없이 상대를 비방하고,
공격하고, 죽이려 하고 또 이런 공격에 그저 죽을 수 없다며 강하게 맞서고,
더 나아가 같은 방식으로 역공격을 하는 이들의 공격성이랄까
전투성에 놀라는데 우리는 영적 전투에서 이들보다 더 전투적이어야 합니다.
그런데 또 다른 전투가 있는데 전투하지 않는 전투입니다.
사실 싸움의 고수는 졸개들과는 싸우지 않고 고수들과 싸우며
무엇보다도 최고의 고수는 싸우지 않고 이기는 거라고 하지요.
이런 면에서 바오로 사도는 오늘 2독서에서 아주 담담하게
믿음과 희망과 사랑의 승리를 얘기합니다.
“우리는 믿습니다. 그러므로 말합니다.”
“우리는 낙심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지금 겪는 일시적이고
가벼운 환난이 그지없이 크고 영원한 영광을 우리에게 마련해 줍니다.
보이는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것을 우리가 바라보기 때문입니다.
보이는 것은 잠시뿐이지만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합니다.”
그리고 어제 성무일도 저녁기도 성경소구도 이렇게 얘기합니다.
“하느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그것은 여러분이 그리스도 예수를 믿고
모든 성도에게 사랑을 보여 주고 있다는 말을 전해 들었기 때문입니다.
그 믿음과 사랑은 여러분을 위해서 하늘에 마련해 두신
축복에 대한 희망에서 나온 것입니다.”
세상이 아무리 죄에 물들고 싸움을 걸어와도
분노하여 다투거나 반대로 실망하거나 낙담하지 않고
믿으므로 말한다는 바오로 사도의 말처럼 믿음을 고백하고,
하느님의 뜻을 실천하는 사람이 당신의 어머니며 형제라는
주님의 말씀대로 하느님의 뜻을 실천하며 살아가는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