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복음이 프란치스코와 그를 따르는 이들에게
이정표가 되는 복음이라는 것을 프란치스칸들이라면 누구나 압니다.
저도 오랫동안 프란치스코가 이 복음을 통해 자신의 소명을 발견하고
복음 말씀대로 복음을 선포하는 순례자와 나그네의 삶을 살기 시작했다는
사실 때문에 오늘 복음을 순례자와 나그네 영성의 관점에서만 이해했습니다.
그런데 오늘 복음을 뜯어보면 정주 영성의 측면도 있습니다.
“어디에서나 어느 집에 들어가거든 그 고장을 떠날 때까지
그 집에 머물러라.”고 말씀하시지 않습니까?
그러므로 파견 받아 가는 삶도 주님이 원하시는 삶이요,
한 곳에 정주하는 삶도 주님이 원하시는 삶인데 관건은
정주하든 떠나든 주님이 원하시는 대로 해야 한다는 거지요.
그런데 우리는 종종 주님이 원하시는 것이 아니라
자기 좋을 대로 그리 할 수 있습니다.
어떤 때는 무작정 떠나고 싶고 어떤 때는 꼼짝도 하기 싫으며,
어떤 사람은 좀체 떠나려 하지 않고 어떤 사람은 여행을 즐겨합니다.
그러니 한 곳에 머물건 떠나건 그것은 자기 상황이나 취향대로 사는 것이지
주님의 성소를 사는 것도 영성을 사는 것도 아닙니다.
정주영성의 깊은 뜻은 머무는 곳만 정해진 대로 사는 것이 아니라
시간과 공간 모두 내가 주인이 아니라 하느님이 주인이시고
그래서 주인이신 하느님이 정해주시는 대로 모든 일을 하겠다는 겁니다.
이는 우리 인간이 무엇이든 자기 좋을 대로 하려 하고,
심지어 하느님의 일마저 자기 좋을 대로 하고자 하는
그릇된 자유본성에 대한 극복이요 위대한 자기포기인 겁니다.
그런데 인간의 또 다른 본성이 안정희구입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떠나기를 원하시는데도
안정을 깨고 싶지 않아 안정에 안주합니다.
정주를 해야 하는데 안주를 하는 것입니다.
프란치스칸의 순례자와 나그네 영성도 마찬가지로
이 안주 본능에 대한 극복이요 위대한 자기포기입니다.
그러나 프란치스칸 영성의 궁극적 목적이 자기 극복과 포기는 아니지요.
나를 위해서는 이 세상에 안주치 않고 하느님께 가 하느님과 일치하는 거요,
이웃을 위해서는 하느님의 파견을 받아 하느님을 전하는 거지요,
오늘 파견을 받는 주님의 제자들처럼 하느님을 모르고,
복음을 모르는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 말입니다.
그러기에 가는 것도 두 가지입니다.
나의 천국행을 위해서는 주님을 따라가는 것이고,
이웃의 복음화를 위해서는 복음을 들고 다가가는 것입니다.
그러나 둘 다 가는 것이기에 아무 것도 가지지 말아야 합니다.
주님을 따라 천국에 가기 위해서는 모든 것을 팔아
가난한 사람에게 나누어주고 따르라 주님 말씀하시고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는 아무 것도 지니지 말고
복음만 들고 떠나라고 오늘 복음에서 말씀하십니다.
전에 얘기했듯이 인도적인 사업을 하기 위해서라면
돈을 가져가야 하고 그래야 환영을 받지만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는 복음만 가져가면 되고
나머지는 다 하느님께만 온전히 의지하면 됩니다.
돈을 가져가면 돈에 의지하려 하기에
오히려 복음 선포에 방해가 되기 때문입니다.
복음만 가져가서 복음을 전하고, 아무 것 없이 가서
오직 주님의 힘으로만 복음을 전하라는 가르침을 받는 오늘입니다.
그러나 성령의 이끌림, 곧 주님의 명하심에 예민하게 이끌리기를 바라며..
감사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