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야고보서는
믿음과 실천의 관계, 즉
“실천과 함께 작용하는 믿음”과
“실천으로 완성되는 믿음”에 대해서 얘기합니다.
우리가 주님께 대한 믿음을 얘기할 때
그 믿음에는 두 가지 차원이 있습니다.
주님 존재에 대한 믿음이 하나이고
주님의 말씀과 가르침에 대한 믿음이 다른 하나입니다.
첫째로 주님 존재에 대한 믿음은
주님께서는 존재하시고
우리 가운데 현존하신다는 믿음에서부터 시작하여
주님은 사랑이시고
주님은 선이시고
주님은 전능하시고
주님은 의로우시고
주님은 은총과 구원을 주시는 분이라고 믿는 것입니다.
주님은 이러한 분이시라는 것을 믿을 때
우리에게 따르는 것은 존재적 투신입니다.
이런 하느님께 나의 전 존재를 완전히 믿고 맡기는 것입니다.
내가 지금 큰 병이 들었어도
내가 지금 크나큰 고통 중에 있어도
내가 지금 아브라함처럼 자식을 잃게 되는 시련에 처했어도
주님은 여전히 나를 사랑하시고
주님은 여전히 나에게 좋은 분이시고
주님은 여전히 의로우신 분이시라고 믿는 것이고,
이러한 것들은 주님께서 벌을 주시는 것이 아니라
은총과 구원을 위해 주시는 것이라고 믿는 것이며,
주님께 대한 이런 믿음으로 자기 전 존재와 삶을 맡깁니다.
두 번째는 주님의 가르침과 말씀에 대한 믿음입니다.
주님의 가르침과 말씀은 옳다고 ale을 뿐 아니라
영이요 생명이라고 믿는 것입니다.
주님의 말씀이 알아듣기 어려워 투덜거릴 때
주님께서는 당신의 말씀은 영이요 생명이라 하시고
사람들이 모두 떠났을 때
주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너희도 떠나겠느냐 물으셨고
이 때 베드로는 “주님, 저희가 누구에게 가겠습니까?
주님께는 영원한 생명의 말씀이 있습니다.”하고 대답합니다.
주님의 말씀을 이렇게 믿을 때
우리에게 따르는 것은 행동이고, 실천적 투신입니다.
주님 말씀을 온전히 실천하는 것입니다.
가난한 사람 행복하다는 말씀이 당장 이해되지 않아도
자기를 버리고 나를 따르라는 말씀과
네 이웃을 네 몸처럼 사랑하라는 말씀과
원수까지 사랑하라는 말씀이 당장은 받아들이기 힘들어도
이 말씀이 영이요 생명을 주시는 말씀임을 믿고 실천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이해하고 받아들이기 힘든 말씀을 실천할 때
우리의 믿음이 진실하고 완전한 것이 증명됩니다.
아브라함에게 이사악을 바치라는 말씀은
이해도 가지 않고 받아들이기도 힘든 말씀이었습니다.
그래도 주님은 좋으시고 사랑이시며
주님 말씀에는 분명 무슨 뜻이 있다고 믿고
그대로 실천함으로써 그 믿음이 완성되었습니다.
말씀에 대한 믿음은 깨달음 더하기 실천입니다.
그러하기에
실천되지 않는 말씀에 대한 깨달음은
전 존재적인 믿음이 아니라
존재의 한 부분인 지적인 놀음입니다.
실천만큼 우리는 주님의 말씀을 믿는 것이고
실천만큼 우리는 주님의 말씀에 전 존재적으로 투신하는 것입니다.
믿음과 실천의 관계, 즉
“실천과 함께 작용하는 믿음”과
“실천으로 완성되는 믿음”에 대해서 얘기합니다.
우리가 주님께 대한 믿음을 얘기할 때
그 믿음에는 두 가지 차원이 있습니다.
주님 존재에 대한 믿음이 하나이고
주님의 말씀과 가르침에 대한 믿음이 다른 하나입니다.
첫째로 주님 존재에 대한 믿음은
주님께서는 존재하시고
우리 가운데 현존하신다는 믿음에서부터 시작하여
주님은 사랑이시고
주님은 선이시고
주님은 전능하시고
주님은 의로우시고
주님은 은총과 구원을 주시는 분이라고 믿는 것입니다.
주님은 이러한 분이시라는 것을 믿을 때
우리에게 따르는 것은 존재적 투신입니다.
이런 하느님께 나의 전 존재를 완전히 믿고 맡기는 것입니다.
내가 지금 큰 병이 들었어도
내가 지금 크나큰 고통 중에 있어도
내가 지금 아브라함처럼 자식을 잃게 되는 시련에 처했어도
주님은 여전히 나를 사랑하시고
주님은 여전히 나에게 좋은 분이시고
주님은 여전히 의로우신 분이시라고 믿는 것이고,
이러한 것들은 주님께서 벌을 주시는 것이 아니라
은총과 구원을 위해 주시는 것이라고 믿는 것이며,
주님께 대한 이런 믿음으로 자기 전 존재와 삶을 맡깁니다.
두 번째는 주님의 가르침과 말씀에 대한 믿음입니다.
주님의 가르침과 말씀은 옳다고 ale을 뿐 아니라
영이요 생명이라고 믿는 것입니다.
주님의 말씀이 알아듣기 어려워 투덜거릴 때
주님께서는 당신의 말씀은 영이요 생명이라 하시고
사람들이 모두 떠났을 때
주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너희도 떠나겠느냐 물으셨고
이 때 베드로는 “주님, 저희가 누구에게 가겠습니까?
주님께는 영원한 생명의 말씀이 있습니다.”하고 대답합니다.
주님의 말씀을 이렇게 믿을 때
우리에게 따르는 것은 행동이고, 실천적 투신입니다.
주님 말씀을 온전히 실천하는 것입니다.
가난한 사람 행복하다는 말씀이 당장 이해되지 않아도
자기를 버리고 나를 따르라는 말씀과
네 이웃을 네 몸처럼 사랑하라는 말씀과
원수까지 사랑하라는 말씀이 당장은 받아들이기 힘들어도
이 말씀이 영이요 생명을 주시는 말씀임을 믿고 실천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이해하고 받아들이기 힘든 말씀을 실천할 때
우리의 믿음이 진실하고 완전한 것이 증명됩니다.
아브라함에게 이사악을 바치라는 말씀은
이해도 가지 않고 받아들이기도 힘든 말씀이었습니다.
그래도 주님은 좋으시고 사랑이시며
주님 말씀에는 분명 무슨 뜻이 있다고 믿고
그대로 실천함으로써 그 믿음이 완성되었습니다.
말씀에 대한 믿음은 깨달음 더하기 실천입니다.
그러하기에
실천되지 않는 말씀에 대한 깨달음은
전 존재적인 믿음이 아니라
존재의 한 부분인 지적인 놀음입니다.
실천만큼 우리는 주님의 말씀을 믿는 것이고
실천만큼 우리는 주님의 말씀에 전 존재적으로 투신하는 것입니다.
묵상 잘 하고 떠납니다.
믿음주시기를 구하여봅니다..
전 존재적으로 투신한 순교적 삶... 오늘 하루 살아갈 힘을 얻습니다.
은총과 구원을 위해 주시는 것이다."
대단이 위로가되는 말씀입니다.
감사드림니다.
주님의 말씀을 들은만큼, 아는 만큼, 배운 만큼,
삶으로 살겠습니다.!
주님께서는 저희에게 은총과 구원을 주시는 분이신 줄 믿습니다.
그 믿음으로 저의 전 존재와 삶을 당신께 맡기나이다!
오늘 좋으신 말씀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