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통을 겪는 사람은 기도하라고 야고보서는 얘기합니다.
그런데 고통을 겪으며 기도하지 않는 사람이 있습니까?
즐거운 사람은 찬양 노래를 부르라고 야고보서는 얘기합니다.
그런데 즐거워도 찬양 노래 않는 사람이 있습니까?
아프면 원로를 불러 기도를 청하라고 야고보서는 얘기합니다.
그런데 아파도 원로를 부르지 않고 기도 부탁도 않는 사람이 있습니까?
2주간의 야고보서 봉독이
오늘로 끝이 납니다.
영육간에 건강한 삶을 살라고 우리를 초대합니다.
그러면
나는 어떤 사람입니까?
고통에 기도하고
즐거우면 노래하고
아프면 기도부탁 합니까?
그렇다면 나는 건강한 사람입니다.
건강한 관계를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그러지 않는 사람도 있습니다.
강의나 강론을 할 때 보면 그런 사람이 눈에 띱니다.
눈을 마주치지 않고
반응하지 않습니다.
의미 있는 내용에도 감동하지 않고
웃기는 얘기에도 웃지 않습니다.
아마 감동하던 그 마음으로 실망할까봐
감동을 껐을 겁니다.
아마 웃으며 즐거워하던 그 마음으로 슬퍼하며 괴로워할까봐
아예 마음을 닫았을 것입니다.
마음의 상처를 차단하기 위해
모든 외적인 자극을 차단하였을 것이고
모든 반응을 차단하였을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기도를 드렸는데도 응답을 받지 않을까봐
아예 기도하지 않았을 것이고
와 달라고 원로를 초대했는데 오지 않아 실망할까봐
무시당하여 몸 뿐 아니라 마음까지 괴로울까봐
아예 청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고통을 겪으며 기도하지 않는 사람이 있습니까?
즐거운 사람은 찬양 노래를 부르라고 야고보서는 얘기합니다.
그런데 즐거워도 찬양 노래 않는 사람이 있습니까?
아프면 원로를 불러 기도를 청하라고 야고보서는 얘기합니다.
그런데 아파도 원로를 부르지 않고 기도 부탁도 않는 사람이 있습니까?
2주간의 야고보서 봉독이
오늘로 끝이 납니다.
영육간에 건강한 삶을 살라고 우리를 초대합니다.
그러면
나는 어떤 사람입니까?
고통에 기도하고
즐거우면 노래하고
아프면 기도부탁 합니까?
그렇다면 나는 건강한 사람입니다.
건강한 관계를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그러지 않는 사람도 있습니다.
강의나 강론을 할 때 보면 그런 사람이 눈에 띱니다.
눈을 마주치지 않고
반응하지 않습니다.
의미 있는 내용에도 감동하지 않고
웃기는 얘기에도 웃지 않습니다.
아마 감동하던 그 마음으로 실망할까봐
감동을 껐을 겁니다.
아마 웃으며 즐거워하던 그 마음으로 슬퍼하며 괴로워할까봐
아예 마음을 닫았을 것입니다.
마음의 상처를 차단하기 위해
모든 외적인 자극을 차단하였을 것이고
모든 반응을 차단하였을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기도를 드렸는데도 응답을 받지 않을까봐
아예 기도하지 않았을 것이고
와 달라고 원로를 초대했는데 오지 않아 실망할까봐
무시당하여 몸 뿐 아니라 마음까지 괴로울까봐
아예 청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슬플때 눈물 흘리고,기쁠때 환하게 웃고,괴로울때 고민하고...
그러나 이 모든것중에 좋은것만 주님이 주신것이 아니라는 것을...
슬픔도,고통도, 주님께서 주신것이라고...
그러면 덜 괴롭고, 의미있는 아픔이 될거예요!
즐거워 찬양 노래를 부르는 것도...
아픈 것도...
믿음의 기도를 통해 서로 서로 용서하고 용서 받고...
이곳에 의인의 마음이 함께 하니깐요...
더불어 살아가며 겪는 모든 것이 '삶'이라는 묵상을 하고 떠납니다.
아직도...더 깊게 들어가지 못하고..
반응하지 못하고...
감동 받지 못하는...
제 자신의 모습도 바라 보면서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