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우리가 성모 승천 대축일을 지내며 기리는 의미는
주님의 어머니 마리아가 주님처럼 승천하셨다는 것과
하늘로 오르시되 부패됨 없이 오르셨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주님 승천 축일이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성모 승천 축일이 평행적으로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잘 알아야 할 것은 이 축일의 이름이 의미하는 것을
얼핏 생각하면 성모 승천이 마리아께서 스스로 하늘에 오르신 거로
우리가 이해할 수 있다는 점입니다.
그런데 이것을 옛날처럼 성모 몽소승천蒙召昇天이라고 쓰면
성모님께서 하늘로 부르심 받아 올라가셨다는 뜻이 되면서
수동태가 되며 하느님께서 마리아를 불러올리신 것이 됩니다.
저는 올해 이 축일을 지내면서는 이 수동성을 강조하고 싶습니다.
왜냐면 성모 승천의 영광이 성모님의 영광일지라도 그것이 마리아가
스스로 이룩한 승천의 영광으로 이해되어서는 안 되기 때문입니다.
사실 아담과 하와는 스스로 하느님과 같아지려 함으로써 죄를 지었고,
그래서 하늘로 오르려다가 스스로 타락했고 추락했는데
예수님과 마리아는 새 아담과 새 하와로써 이것을 되돌리신 것이지요.
필리비서의 그리스도 찬가를 보면
그리스도께서는 하느님과 본질이 같은 분이셨지만
굳이 당신의 신적 위치를 고집하지 않고 죽기까지 순종하는
종이 되시고 사람이 되시자 하느님께서 주님을 들어 높이셨다고 노래하지요.
그러니까 주님도 그렇고 그분의 어머니요 새 하와이신 마리아도
스스로 하신 것은 오르신 것이 아니라 종으로 내려오신 것이고,
오르신 것은 스스로가 아니라 하느님에 의한 수동태입니다.
사실 하느님께서 우리를 낙원에 두셨지만 우리 탓으로 추락했다고
프란치스코가 얘기하듯 우리를 추락케 한 우리의 많은 죄는
우리가 뭘 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하느님께서 우리 안에서
뭘 하시는 것을 못하게 해서 지은 죄입니다.
뭘 하지 않은 죄가 아니라 하느님께서 뭘 못하시게 한 죄라는 얘깁니다.
제 생각에 이 수동태가 마리아의 능동태이고 공로이며,
그래서 순종이고, 겸손이고, 사랑입니다.
그러니까 하느님께서 뭐든 마리아를 통해서 하실 수 있었던 것은 성모님이
‘뭣이든 원하시는 대로 하십시오.’라고 스스로 수동태가 되셨기 때문인데
이 스스로 수동태가 됨이 마리아의 공로요 능동태이자 순종이라는 겁니다.
이해하기 쉽도록 비교를 한다면
마지못해 수락하는 것과 기꺼이 능동적으로 수락하는 것이 있는데
하느님께서 당신 뜻대로 하시도록 우리가 수락하는 것이 마지못한 거라면
성모님이 수락하시는 것은 기꺼이 능동적으로 수락하시는 거라는 얘기지요.
또 다시 인사 명령을 예를 든다면 어디 가라는 인사 명령을 보고 난 뒤
기꺼이 그대로 하는 것도 훌륭한 태도이고 순종이지만 보기 전에
기꺼이 순종하기로 마음먹고 그렇게 순종하는 것이 더 훌륭한 태도이고,
이런 태도를 일컬어 능동적인 수동태라고 하는 것이지요.
백지수표를 내놓고 원하는 금액을 알아서 쓰게 하듯
백지를 내놓고 원하시는 명령을 거기에 적으시라고 하는 것이고,
하와가 죄를 짓고 천국낙원으로부터 추락하고 우리에게 대물림한 것을
이런 태도로 마리아는 하늘로 올림을 받고 그것을 우리에게 본 보이십니다.
그래서 오늘 축일의 감사송은 이렇게 노래하지요.
“동정 마리아께서는 완성될 주님 교회의 시작이며 모상으로서,
나그넷길에 있는 주님의 백성에게 희망과 위안을 보증해 주셨나이다.”
하느님의 뜻이 완전히 이루어지는 주님 교회가 우리 안에서 완성되도록
그 시작이요 모상인 마리아를 우리가 본 받으라고 가르치는 오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