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은 모세의 자리에 앉아 있다.
그러니 그들이 너희에게 말하는 것은 다 실행하고 지켜라.
그러나 그들의 행실은 따라 하지 마라.”
오늘 주님께서는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의 행실에 대해 말씀하시며
우리가 따라 하지 말아야 그들의 행실에 대해서 말씀하시는데
그것을 제 생각대로 요약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하느님 앞에 있지 않고 사람 앞에 있는 것.
-하느님 아래 있지 않고 사람 위에 있는 것.
그런데 오늘 주님의 말씀은 누구보다도 저에게 하시는 말씀이기에
이에 비추어 저 자신을 보았고 제가 어디에 있는지 보았습니다.
우선 심리학적으로 볼 때 제가 감성형의 성격이기 때문인지
아니면 인간적 또는 영적 미성숙 때문인지 좋을 때는
다른 사람의 처지를 고려하여 잘 배려하지만 안 좋을 때는
다른 사람을 지나치게 의식하여 주님 앞에 있기보다는
늘 사람 앞에 있는 자신을 의식하기도 합니다.
지난 5일간 중국 선교사들을 위한 연수회를 하면서도
저는 새로운 사람들과의 친교에 예민해있는 자신과
그런 것에 영적으로 초연하려는 자신 사이에 은근한 긴장을 느꼈지요.
그것은 제가 이번에 이 모임의 책임을 맡게 되었기 때문에 더 그러했지요.
말하자면 오늘 주님께서 모세의 <자리>에 앉아 있는
율법학자와 바리사이들에게 한 말씀을 하신 것과 마찬가지로
<자리>에 앉은 자의 그런 위선적인 의식이요 긴장인 것입니다.
사실 저는 오랫동안 이러저러한 책임자의 자리에 있었기에
<자리>에서 비롯된 의식이나 긴장을 이제는 벗어나고 싶었는데,
그리고 <자리>에 있어도 그런 것들에 초연한 제가 되고 싶었는데
여전하다는 것, 사람들의 헤살에 하느님께의 집중과 몰두가 여전히
어려운 저라는 것을 다시 확인한 것입니다.
이곳 가리봉에 와서 지난 8개월 동안 애쓴 노력이
도로아무타불이 된 것 같아 참 허망한 느낌이었습니다.
다음으로 종교지도자들이 잘못한 것, 그러니까
우리가 따라하지 말아야 할 것은 감히 하느님의 자리를 차지하고
사람들 위해 군림하는 행실입니다.
이에 대해 주님께서는 아무도 하느님 대신 아버지 소리 들으려하지 말고,
그리스도 대신 스승 소리를 들으려 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하느님만이 우리 아버지요 그리스도만이 우리 스승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이것을 저에게 적용하면
전과 비교할 때 이제는 남위에 군림하는 일이 많이 적어졌습니다.
전에는 사랑을 한다면서도 아버지처럼 군림하는 사랑을 하곤 했는데
이젠 엄마들처럼 밑에서 부축해주고 섬기는 사랑을 더 많이 하는 편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다른 측면입니다.
하느님만이 나의 아버지이고 주님만이 나의 스승이어야 하는데
하느님과 예수 그리스도만을 나의 아버지와 스승으로 모시려는
추상과 같은 의지가 전과 비교하여 현저히 떨어진 것입니다.
프란치스코는 아버지로부터 받은 것은 입고 있는 옷까지 다 돌려주며
하느님만을 아버지라고 자유롭게 부르게 되었다고 선언하였고,
그럼으로써 오늘 주님 말씀처럼 모두를 형제라 부를 수 있게 되었지요.
그러니까 하느님을 나의 아버지라고 부르고
하느님의 모든 피조물을 나의 형제라 부르게 된 것인데
그저 입으로가 아니라 진실로 하느님이 나의 아버지가 될 때
진실로 하느님의 모든 피조물이 나의 형제가 되는 것입니다.
이것을 다시 한 번 마음에 새기는 오늘이 되어야겠습니다.
나의 전부시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