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9월 23일 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와 성 정하상 바오로 동료순교자 대축일
오늘은 연중 제25주일이자 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와 성 정하상 바오로 동료 순교자들을 기억하는 날입니다.
9월 순교성월의 막바지에 이르는데 즈음하여 특별히 1801년에 배교한 별로 알려지지 않은
어느 신앙인의 삶을 통해 순교의 참된 의미를 되새겨 보고자 합니다.
자랑스러운 순교자는 못되었지만 고독 속에서 힘겹게 일어나 끝까지 하느님을 따른
최해두의 신앙고백은 또 다른 차원의 순교를 묵상케 합니다.
최해두는 1801년 신유박해가 일어나자 피신했지만 그의 부친이 대신 잡혔다는 소식을 듣고
자수하고 유배형을 선고받습니다.
그는 친구도 책도 없이 지옥이 가까이 오는 듯한 유배중에 배교행위에 대한 자책의 마음을 다음과 같이 토로합니다.
“두루 마음이 심란하고 답답하여 두어줄 글을 기록하노니 슬프고 슬프도다.
사람이 세상에 나서 본래 주님을 모르는 이는 없지만 나는 이미 교리를 듣고 거의 20년 죽기로써 봉사하노라 하다가,
시절이 불행해서… 나같이 공덕도 없고 죄많은 인생은 썩고 썩어 동국봉교인(東國奉敎人)에게 내리신
그리 흔한 치명의 큰 은혜에 참여치 못하고 원통히 나혼자 빠져나와
이 흥해 옥중에 잔명이 붙어 살았으니, 이 무슨 일인고!”
이런 상황에서 그는 복음의 진복팔단에서 고난을 받는 것이 진복이라는 말씀을 기억하고
유배의 외로움과 천주학 죄인이라는 주위의 말을 달게 받아들이기로 결심합니다.
고백성사를 볼 기회도 없는 그에게 힘을 북돋아 준 것은 통회의 눈물과 조만과경이었습니다.
죄를 지어 예수를 두 번 못 박은 것을 가슴아파하지만 “예수와 성모와 하느님을 의뢰하여
힘써 선을 행하면 도와주시니 의뢰할 곳이 곧 이에 더 지날 곳이 없으리라”고
고통속에서 믿음과 희망을 깨닫게 됩니다.
유배중에 그는 매일의 기도를 통해 하느님께 대한 깊은 믿음으로 참된 순교의 의미를 깨닫게 됩니다.
“도끼에 죽는 이는 잠시 치명(致命)이어니와, 은수자와 고통속에 수도하는 자의 공부는
곧 일생의 치명이라 더욱 어렵다 하고 계시니 우리의 치명터를 만났으니 감수여부에 달려있도다”
자신의 배교를 가슴아파하며 괴로움에서 시작한 그의 자책은 통회의 눈물과 귀양살이의 고난을 통해
마침내 참된 신앙인으로 거듭나는 모습은 참된 순교의 삶이 어떤 것인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주님 때문에 배교하지 않고 끝가지 신앙을 지켜 승리의 월계관을 받은 선조들의 순교신앙을 본받는 것은
우리 신앙인들에게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그러나 인간의 나약함으로 인해 한때 예수님을 부인한 베드로처럼 앞서 설명한 배교자 최해두 처럼
다시 통회하고 뉘우치며 일상에서 만나는 오해, 비난, 박해, 수치 등을 감내하고
낙담하지 말고 용기를 가지고 항구한 기도로 주님의 품으로 되돌아가는 것이
더 의미있는 순교신앙을 사는 것입니다.
바로 이런 순교의 삶을 살도록 선조 순교자들은 우리를 초대하고 있습니다.
고 도미니코 of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