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어머니와 내 형제들은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실행하는 이 사람들이다.”
이제는 오늘 주님 말씀을 가지고 오해하거나 헛소리하는 사람 없을 겁니다.
이 말을 가지고 마리아를 당신을 낳아 준 분 이상으로 의미 부여하는 것을
주님께서 거부하신 표시라고 하거나 그래서 마리아를 너무 공경한다고
가톨릭을 비판하는데 깊은 의미를 안다면 오해이고 헛소리일 뿐입니다.
제 생각에 이 말씀을 더 완전하고 깊이 이해를 하면 이런 것이 될 겁니다.
곧, ‘내 어머니와 내 형제들은 육신의 어머니와 형제들이 아니라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실행하는 이 사람들이다.’는 뜻도 되지만
그보다는 ‘내 어머니 마리아처럼만 하느님 말씀을 듣고 실행한다면
여기 있는 이 모든 사람이 다 내 어머니이고 형제들이다.’는 뜻이 될 겁니다.
오늘 주님께서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실천하면 당신 어머니라고 하신 것은
좀체 들으려고도 하지 않던 우리가 듣게 되거나
듣고도 실천치 않던 우리가 이제 좀 실천을 하게 되면
이제 당신의 어머니라는 말씀 정도가 아닙니다.
그저 주인의 말씀을 듣는 것은 종도 듣고
주인 말대로 실천하는 것도 종은 합니다.
그러니까 오늘 말씀은 종처럼 순종을 잘하라는 말씀 이상입니다.
하느님의 말씀을 사랑하여 어머니처럼 하느님의 말씀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낳으라는 말씀입니다.
하느님의 말씀을 종처럼 두려워하며 듣고 실천할 수도 있지만
하느님의 말씀을 연인이나 어머니처럼 사랑으로 듣고 실천할 수도 있는데
여기서는 어머니처럼 그러니까 마리아처럼 듣고 실천하라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하느님 말씀을 듣는 것은 하느님의 말씀을 거부하지 않고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존재를 수용하는 것입니다.
근자에 젊은 부부들을 만났습니다.
애 키우는 어려움이 얼마나 큰 지 애 엄마만 얘기하는 것이 아니라
애 아버지까지 얘기하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애를 또 낳으라고 하면 못 낳을 것 같다고 얘기하는 거였습니다.
하나 더 낳으라는 얘기를 하려고 했는데 그 입막음을 하는 것 같아서
그래서 말도 못 꺼냈는데 아무튼 이 경우 애를 낳으라고 제가 말하면
이 때 말을 듣는 것은 곧 아이를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고 뭐겠습니까?
그리고 이 때 아이를 낳기로 할 경우
제 말에 순종해서 낳을 젊은이들이 얼마나 되겠습니까?
서로 사랑하기에 아이를 낳거나 아이를 사랑해서 아이를 낳거나 하겠지요?
한 인간 아이를 낳는 것도 이러한데 하느님의 말씀이신 성자를 낳는 것은
더더욱 사랑이 아니고 순종만으로는 불가능할 것입니다.
다음으로 들은 말씀을 실천하는 것을 보겠는데
이 역시 순종으로 실천하는 것 이상의 사랑의 실천입니다.
그런데 순종이 아니라 사랑으로 실천한다는 것이 도대체 뭘까요?
그래서 제가 관념적으로가 아니라 구체적으로 생각을 해봤는데
그것은 구체적으로 지금 내 옆에 내가 정말로 싫어하는 사람,
그 사람을 받아들이는 것이요, 그 사람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예수님께서 겟세마니에서 피땀 흘리며
성부의 뜻에 순종하시고 십자가에 돌아가신 것처럼
우리도 싫어하는 일을 순종 때문에 할 수도 있지만
여기서는 싫어하는 일이 아니라 싫어하는 사람을
더 이상 싫어하지 않고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실천하라는 오늘 주님의 말씀은
싫어하는 사람을 거부하지 말고 받아들이라는 말씀이요,
그 사람을 사랑하라는 아주 구체적인 말씀임을 묵상하는 오늘입니다.
강론을 통해 말씀을 보게 되면
그리스도인이라고 하는 저의 삶이 구체적으로 변해야만 하는 군요
오늘 같은 경우는 그냥 피하고 싶은 사람을 생각안하는 것이면 된다고 생각했는데
사랑하라고 하시네요 마태18,27....수사님 오늘도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