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례를 받고 얼마되지 않았을 때, 저도 사실 믿음이 강하지 못했습니다. 정말 하느님은 계실까? 예수님께서 그 많은 기적들을 행하셨을까? 그분이 하신 말씀은 모두 옳은가? 등등... 그리고 혼자 생각했습니다. ‘하느님께서 나에게 기적을 베풀어 준다면 모든 걸 다 믿을 수 있을텐데’.
예수님께서 저에게 기적을 베푸셨을까요? 적어도 호수 위를 걸어다니는 기적을 보여주지는 않으셨습니다. 그리고 설사 예수님께서 불가능해 보이는 기적들을 저에게 일으켜주셨다고 해서 저의 믿음이 강해지고 모든 의심이 없어졌을까요?
오늘 베드로는 자신의 눈으로 물 위를 걷는 예수님의 기적을 봅니다. 그 바로 전날에는 빵을 많게 하는 기적도 직접 목격했죠. 그리고 예수님과 함께 한 여정 가운데 병자를 낫게하고 마귀를 쫓아내고, 죽은 사람들을 다시 일으키시는 장면들도 보았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참으로 많은 기적들을 베드로의 눈 앞에서 보여주셨죠? 하지만 교회의 반석이고 사도들의 으뜸인 베드로의 바위같은 믿음이 생긴 것이 그 기적들 때문이었을까요?
오늘의 기적을 보고 베드로와 제자들은 “스승님은 참으로 하느님의 아드님이십니다.”하고 신앙 고백을 합니다. 하지만 베드로의 신앙은 뭔가 위태롭다는 느낌이 듭니다. 그의 고백의 참된 것이고 완성된 것이라면 예수님을 배반하지도 않았을 것이고, 예수님의 돌아가셨을 때 절망하지도 않았겠지요. 수많은 믿기 어려운 기적들이 베드로의 믿음을 완성하지는 못한 것 같습니다.
기적은 주님을 만나는 장이기도 합니다. 오늘 독서에서 엘리야 예언자가 주님을 만난 것은 크고 강한 바람 안에서도 아니었고, 강한 지진 가운데서도 아니었고, 불 속에서도 아니었습니다. 그런 강렬한 것들이 아니라, 조용하고 부드러운 소리를 통해 엘리야는 주님을 만납니다.
이처럼 얼핏 강렬한 현상들이 사람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기고, 강렬한 기적 체험이 믿음의 동기는 부여할 수는 있겠지만, 믿음을 완성한다고는 장담할 수 없습니다.
우리가 잘 알다시피 베드로의 믿음이 완성된 것은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고 나서입니다. 부활 또한 더할 수 없이 강렬한 기적 체험이지만, 그것이 믿음으로 완결될 수 있었던 것은 예수님의 죽음 그 뒤에 남은 자포자기, 너무 조용해서 적막하기까지 했던 상태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모든 것이 끝나버린 절망 안에 내포된, 작지만 꺼지지 않고 남아있던 그 어떤 것, 그것이 예수님께서 어제 복음에서 말씀하신 겨자씨만한 믿음이 아닐까요? 그리고 그 작은 씨앗이 기적을 비로소 온전한 믿음으로 꽃피우지 않았을까요.
예수님께서 저에게 기적을 베푸셨을까요? 적어도 호수 위를 걸어다니는 기적을 보여주지는 않으셨습니다. 그리고 설사 예수님께서 불가능해 보이는 기적들을 저에게 일으켜주셨다고 해서 저의 믿음이 강해지고 모든 의심이 없어졌을까요?
오늘 베드로는 자신의 눈으로 물 위를 걷는 예수님의 기적을 봅니다. 그 바로 전날에는 빵을 많게 하는 기적도 직접 목격했죠. 그리고 예수님과 함께 한 여정 가운데 병자를 낫게하고 마귀를 쫓아내고, 죽은 사람들을 다시 일으키시는 장면들도 보았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참으로 많은 기적들을 베드로의 눈 앞에서 보여주셨죠? 하지만 교회의 반석이고 사도들의 으뜸인 베드로의 바위같은 믿음이 생긴 것이 그 기적들 때문이었을까요?
오늘의 기적을 보고 베드로와 제자들은 “스승님은 참으로 하느님의 아드님이십니다.”하고 신앙 고백을 합니다. 하지만 베드로의 신앙은 뭔가 위태롭다는 느낌이 듭니다. 그의 고백의 참된 것이고 완성된 것이라면 예수님을 배반하지도 않았을 것이고, 예수님의 돌아가셨을 때 절망하지도 않았겠지요. 수많은 믿기 어려운 기적들이 베드로의 믿음을 완성하지는 못한 것 같습니다.
기적은 주님을 만나는 장이기도 합니다. 오늘 독서에서 엘리야 예언자가 주님을 만난 것은 크고 강한 바람 안에서도 아니었고, 강한 지진 가운데서도 아니었고, 불 속에서도 아니었습니다. 그런 강렬한 것들이 아니라, 조용하고 부드러운 소리를 통해 엘리야는 주님을 만납니다.
이처럼 얼핏 강렬한 현상들이 사람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기고, 강렬한 기적 체험이 믿음의 동기는 부여할 수는 있겠지만, 믿음을 완성한다고는 장담할 수 없습니다.
우리가 잘 알다시피 베드로의 믿음이 완성된 것은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고 나서입니다. 부활 또한 더할 수 없이 강렬한 기적 체험이지만, 그것이 믿음으로 완결될 수 있었던 것은 예수님의 죽음 그 뒤에 남은 자포자기, 너무 조용해서 적막하기까지 했던 상태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모든 것이 끝나버린 절망 안에 내포된, 작지만 꺼지지 않고 남아있던 그 어떤 것, 그것이 예수님께서 어제 복음에서 말씀하신 겨자씨만한 믿음이 아닐까요? 그리고 그 작은 씨앗이 기적을 비로소 온전한 믿음으로 꽃피우지 않았을까요.
감사드림니다
이렇게 사는 것이 작은 기적 이지요.
순간 순간 사는 것으로 믿음을 완성 하겠습니다.
너무나 조용해서 적막하기까지 한 상태,
모든 것이 끝나버린 듯한 절망감,
그러한 것들로 온전한 믿음을 꽃피울 수 있다면,
저는 그것들을 기꺼이 갈망하겠습니다...
좋으신 말씀 감사드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