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못한 사람에게 가장 잘 못하는 것은 어떤 것인가?
무관심하여 아무 말 하지 않는 것,
알면서도 안 좋은 감정 관계에 휘말리기 싫어 아무 말 하지 않는 것임은
이 글을 읽는 분들은 이제 다 아실 것입니다.
그리고 이에 못지않은 잘못이
잘못한 것을 뒤에서 다른 사람에게 말하는 것일 것입니다.
그러니 화가 나서 잘못을 꾸짖는 것은 양반 축에 드는 것이고
겸손하게 사랑으로 얘기하는 것은
사랑 중에서도 사랑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오늘 복음은
겸손과 사랑으로 잘못을 교정해주는 단계들에 대해 말해주고 있습니다.
첫 단계는 1대1 직접적인 교정입니다.
사실 누가 잘못하면 직접 얘기해 주어야하는데
보통의 우리는 다른 사람의 잘못을 보면
직접 얘기해주는 것이 너무 어렵습니다.
그래서 참고 참다가 화가 나서 얘기하거나
벼르고 벼르다 한 번 얘기를 하지만 아주 힘들게,
그리고 아주 어색하게 얘기해 주고
상대방도 불편한 마음으로 얘기를 받아들입니다.
왜 그렇게 됩니까?
그것은 평상심을 잃지 않고 잘못을 봐야 하는데
그렇게 보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어린 아이는 선입견이나 감정이 없이 보기에
잘못을 직선적으로 얘기하고
겸손하고 사랑이 많은 사람도 판단 없이 따듯하게 잘못을 보기에
일반적인 얘기를 하듯 잘못에 대해 얘기해줍니다.
참으로 신기한 것은
같은 형제의 같은 잘못인데도
어떤 때는 화가 나서 그 잘못을 참을 수 없지만
어떤 때는 “잘못하고 있구먼!”하고 감정 없이 보고
“그건 잘못이야!”하고 서슴없이 그러나 따듯하게 얘기해줍니다.
그러니 1대1 교정에서 나도 어렵지 않게 얘기하고
상대방도 잘 받아들일 수 있게 하는 비결은 마음에 힘을 빼는 것입니다.
마치 자전거를 탈 때 쓰러지지 않으려고
반대 방향으로 몸에 힘을 주면 오히려 쓰러지지만
기우는 방향을 자연스럽게 타면 쓰러지지 않는 것과 같습니다.
자연스럽게 방향을 타는 것,
이것이 평상심을 잃지 않고 잘못을 보는 것이고
겸손과 사랑으로 잘못을 얘기해주는 것이며
마음에 힘을 빼고 잘못을 얘기해주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충고하면 대부분의 사람은
그 교정을 겸손하게 그리고 감사하게 받아들입니다.
그래서 주님께서 오늘 복음에서 말씀하시는
두 번째, 세 번째 단계를 갈 필요도 없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충고했는데도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이 있을 수 있습니다.
이때 그 사람에게는 더 큰 겸손과 더 지극한 사랑이 필요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나의 능력으로는 부족하구나 생각하고
다른 형제들의 지혜와 사랑을 모아야 합니다.
그러나 가능하면 다른 사람이 많이 알지 못하도록
처음에는 두 세 사람에게 지혜와 사랑을 요청하고
그래도 안 되면 공동체 전체의 지혜와 사랑을 요청해야 합니다.
이렇게 세 단계를 다 거쳤는데도 말을 듣지 않는 사람은
인격적으로나 정신적으로 대단히 결함이 있는 사람이기에
오늘 주님이 말씀하시는 대로
교정의 대상 밖으로 내어놓아야 합니다.
사랑을 거둔다는 뜻이 아니라
우리 인간이 하는 교정의 대상 밖으로 내놓는 것입니다.
하느님 교정의 대상으로 내어 놓는 것이고
하느님께 그를 위해 기도하는 것입니다.
그것도 둘이나 셋이 기도하는 것입니다.
무관심하여 아무 말 하지 않는 것,
알면서도 안 좋은 감정 관계에 휘말리기 싫어 아무 말 하지 않는 것임은
이 글을 읽는 분들은 이제 다 아실 것입니다.
그리고 이에 못지않은 잘못이
잘못한 것을 뒤에서 다른 사람에게 말하는 것일 것입니다.
그러니 화가 나서 잘못을 꾸짖는 것은 양반 축에 드는 것이고
겸손하게 사랑으로 얘기하는 것은
사랑 중에서도 사랑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오늘 복음은
겸손과 사랑으로 잘못을 교정해주는 단계들에 대해 말해주고 있습니다.
첫 단계는 1대1 직접적인 교정입니다.
사실 누가 잘못하면 직접 얘기해 주어야하는데
보통의 우리는 다른 사람의 잘못을 보면
직접 얘기해주는 것이 너무 어렵습니다.
그래서 참고 참다가 화가 나서 얘기하거나
벼르고 벼르다 한 번 얘기를 하지만 아주 힘들게,
그리고 아주 어색하게 얘기해 주고
상대방도 불편한 마음으로 얘기를 받아들입니다.
왜 그렇게 됩니까?
그것은 평상심을 잃지 않고 잘못을 봐야 하는데
그렇게 보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어린 아이는 선입견이나 감정이 없이 보기에
잘못을 직선적으로 얘기하고
겸손하고 사랑이 많은 사람도 판단 없이 따듯하게 잘못을 보기에
일반적인 얘기를 하듯 잘못에 대해 얘기해줍니다.
참으로 신기한 것은
같은 형제의 같은 잘못인데도
어떤 때는 화가 나서 그 잘못을 참을 수 없지만
어떤 때는 “잘못하고 있구먼!”하고 감정 없이 보고
“그건 잘못이야!”하고 서슴없이 그러나 따듯하게 얘기해줍니다.
그러니 1대1 교정에서 나도 어렵지 않게 얘기하고
상대방도 잘 받아들일 수 있게 하는 비결은 마음에 힘을 빼는 것입니다.
마치 자전거를 탈 때 쓰러지지 않으려고
반대 방향으로 몸에 힘을 주면 오히려 쓰러지지만
기우는 방향을 자연스럽게 타면 쓰러지지 않는 것과 같습니다.
자연스럽게 방향을 타는 것,
이것이 평상심을 잃지 않고 잘못을 보는 것이고
겸손과 사랑으로 잘못을 얘기해주는 것이며
마음에 힘을 빼고 잘못을 얘기해주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충고하면 대부분의 사람은
그 교정을 겸손하게 그리고 감사하게 받아들입니다.
그래서 주님께서 오늘 복음에서 말씀하시는
두 번째, 세 번째 단계를 갈 필요도 없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충고했는데도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이 있을 수 있습니다.
이때 그 사람에게는 더 큰 겸손과 더 지극한 사랑이 필요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나의 능력으로는 부족하구나 생각하고
다른 형제들의 지혜와 사랑을 모아야 합니다.
그러나 가능하면 다른 사람이 많이 알지 못하도록
처음에는 두 세 사람에게 지혜와 사랑을 요청하고
그래도 안 되면 공동체 전체의 지혜와 사랑을 요청해야 합니다.
이렇게 세 단계를 다 거쳤는데도 말을 듣지 않는 사람은
인격적으로나 정신적으로 대단히 결함이 있는 사람이기에
오늘 주님이 말씀하시는 대로
교정의 대상 밖으로 내어놓아야 합니다.
사랑을 거둔다는 뜻이 아니라
우리 인간이 하는 교정의 대상 밖으로 내놓는 것입니다.
하느님 교정의 대상으로 내어 놓는 것이고
하느님께 그를 위해 기도하는 것입니다.
그것도 둘이나 셋이 기도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