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나 지금이나 좀 더 신앙으로 나아가고자 하는 분들은
기도에 갈증을 느끼고
어떻게 기도해야 하는지에 대한 답답함이 있나 봅니다.
저에게도 어떻게 기도해야 하는지 묻는 분들이 많은데
그때마다 저는 기도하는 특별한 방법이 있는지
찾아 헤매지 말라고 합니다.
누구의 기도가 아니라 자기의 기도를 하라는 뜻이고
정해진 어떤 기도가 아니라 그때그때의 자기 기도를 하라는 뜻입니다.
수도원 들어와서 10년이 될 때까지 저도 기도가 너무 힘들었습니다.
어떻게 기도해야 할지 몰랐고
10년을 기도해도 그 맛을 몰라
기도는 넘을 수 없는 벽처럼 느껴졌습니다.
이렇게 기도의 맛을 모르니
어떻게 일생 수도생활을 해야 할 지 암담하기까지 하였습니다.
그래서 수련을 받게 되었을 때 기도에 승부를 걸기로 하였습니다.
수련을 마칠 때까지 기도의 맛을 느끼지 못하면 수도원을 떠날 각오로
시간만 나면 성당에 가서 죽치고 앉아 있었습니다.
그렇게 몇 달이 지난 어느 날 밤 성당에서 기도하다 잠이 들었는데
아예 의자에 누워 자 버린 것이었습니다.
전에도 그렇게 잠이 들곤 하였고
그러다 깨면 죄책감과 자기 모멸감으로 너무 씁쓰레 했는데
그런데 그날은 왠지 너무도 평온하였습니다.
어렸을 때 어머니 품에 있는 느낌이었습니다.
이때 깨달음이 왔습니다.
성인전을 너무 많이 읽어서
기도에 대한 고정관념이 나에게 있다는 것을 말입니다.
기도를 하면 성인들처럼 아무 분심잡념이 없어야 하고
즉시 무아지경에 들어가 완전히 주님과 일치해야만 한다는.
그런데 성인들처럼 기도해야 한다면
나는 그런 기도를 도저히 할 수 없는 사람입니다.
다시 말해 그런 높은 차원의 기도만이 기도라면
나는 기도를 할 수 없는 사람입니다.
그러니 기도에도 겸손이 필요합니다.
자기 주제에 맞는 기도.
분심이 있을 때는 분심을 할 수밖에 없고,
걱정이 있을 때는 걱정을 안 할 수 없는 나입니다.
그렇다고 기도할 수 없는 것은 아닙니다.
아레오파고에서 바오로 사도가 설교하였듯이(사도 17,28)
우리는 무엇을 하건 하느님 안에서
살고
움직이며
존재합니다.
분심을 하는 중에도 나는 주님 안에 있는 것이며
걱정을 하는 중에도 나는 주님 안에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 이런 자의식을 가지고
분심케 하는 것이 있으면 그 분심을 주님 안에서 하고
걱정케 하는 것이 있으면 그 걱정을 주님과 의논하며
화나는 것이 있으면 돌멩이한테 풀지 말고 주님께 풀면
그것이 곧 기도이고,
그것이 그때 내가 가장 진실하게 할 수 있는 기도입니다.
사랑을 하면 무엇을 하건 그 사람을 떠나지 않듯
기도는
하느님을 사랑하는 사람이
무엇을 하건
그분 안에서 하는 모든 것입니다.
기도에 갈증을 느끼고
어떻게 기도해야 하는지에 대한 답답함이 있나 봅니다.
저에게도 어떻게 기도해야 하는지 묻는 분들이 많은데
그때마다 저는 기도하는 특별한 방법이 있는지
찾아 헤매지 말라고 합니다.
누구의 기도가 아니라 자기의 기도를 하라는 뜻이고
정해진 어떤 기도가 아니라 그때그때의 자기 기도를 하라는 뜻입니다.
수도원 들어와서 10년이 될 때까지 저도 기도가 너무 힘들었습니다.
어떻게 기도해야 할지 몰랐고
10년을 기도해도 그 맛을 몰라
기도는 넘을 수 없는 벽처럼 느껴졌습니다.
이렇게 기도의 맛을 모르니
어떻게 일생 수도생활을 해야 할 지 암담하기까지 하였습니다.
그래서 수련을 받게 되었을 때 기도에 승부를 걸기로 하였습니다.
수련을 마칠 때까지 기도의 맛을 느끼지 못하면 수도원을 떠날 각오로
시간만 나면 성당에 가서 죽치고 앉아 있었습니다.
그렇게 몇 달이 지난 어느 날 밤 성당에서 기도하다 잠이 들었는데
아예 의자에 누워 자 버린 것이었습니다.
전에도 그렇게 잠이 들곤 하였고
그러다 깨면 죄책감과 자기 모멸감으로 너무 씁쓰레 했는데
그런데 그날은 왠지 너무도 평온하였습니다.
어렸을 때 어머니 품에 있는 느낌이었습니다.
이때 깨달음이 왔습니다.
성인전을 너무 많이 읽어서
기도에 대한 고정관념이 나에게 있다는 것을 말입니다.
기도를 하면 성인들처럼 아무 분심잡념이 없어야 하고
즉시 무아지경에 들어가 완전히 주님과 일치해야만 한다는.
그런데 성인들처럼 기도해야 한다면
나는 그런 기도를 도저히 할 수 없는 사람입니다.
다시 말해 그런 높은 차원의 기도만이 기도라면
나는 기도를 할 수 없는 사람입니다.
그러니 기도에도 겸손이 필요합니다.
자기 주제에 맞는 기도.
분심이 있을 때는 분심을 할 수밖에 없고,
걱정이 있을 때는 걱정을 안 할 수 없는 나입니다.
그렇다고 기도할 수 없는 것은 아닙니다.
아레오파고에서 바오로 사도가 설교하였듯이(사도 17,28)
우리는 무엇을 하건 하느님 안에서
살고
움직이며
존재합니다.
분심을 하는 중에도 나는 주님 안에 있는 것이며
걱정을 하는 중에도 나는 주님 안에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 이런 자의식을 가지고
분심케 하는 것이 있으면 그 분심을 주님 안에서 하고
걱정케 하는 것이 있으면 그 걱정을 주님과 의논하며
화나는 것이 있으면 돌멩이한테 풀지 말고 주님께 풀면
그것이 곧 기도이고,
그것이 그때 내가 가장 진실하게 할 수 있는 기도입니다.
사랑을 하면 무엇을 하건 그 사람을 떠나지 않듯
기도는
하느님을 사랑하는 사람이
무엇을 하건
그분 안에서 하는 모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