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독서는 창세기 1장이고 하느님께서 세상을 창조하신 얘기,
그러니까 이 세상이 어떻게 있게 되었는지,
우리 인간이 그리고 내가 어떻게 있게 되었는지 얘기해주는 것입니다.
그리고 모든 것이 스스로 있게 된 것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창조하시어 그리 된 거라는 얘깁니다.
그래서 뭣이 또는 내가 왜 이렇게 되었는지에 대해서는
조상 탓이나 남 탓을 하지 말고 자기 탓도 하지 말라는 것인데
물론 인간의 죄 때문에 그리 된 것을 말하는 것은 아니고
근원적인 문제, 예를 들어 무엇이 왜 이렇게 생겨나게 되었는지에
대한 문제는 인간에게 따지지 말고 하느님께 따지라는 말입니다.
이런 얘기를 굳이 하는 이유는 며칠 전 뉴스를 보다가
인도의 한 젊은이가 부모를 상대로 소송을 걸었는데
자기가 원하지도 않았음에도 태어나게 된 것을 가지고
소송을 걸었다는 얘기를 듣고 기가차서 얘기하는 겁니다.
그러지 않아도 부모는 자기 자녀들에 대한 원죄의식이 있지요.
유전적으로 질병을 물려준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장애로 태어났거나 몸이 약하거나 성격이 못됐거나 그 모두가
자기가 그렇게 물려줬거나 만들어서 그리 된 것이라고 말입니다.
그래서 지난 해 놀지만 말고 뭐라도 좀 하라고 꾸짖자 자기를 칼로 찌르고
방치한 채 도망가는 아들에게 피 묻은 옷은 바꿔 입고 가라고 한
그 엄마처럼 모든 부모들은 못된 자식을 탓하고 미워하기보다는
모든 것을 자기 탓으로 여기며 끝까지 사랑을 포기치 않지요.
그런데 거듭 말하지만 인간이 이렇게 된 것은 부모가 그리 한 것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그리 창조하셨기에 그리 된 것입니다.
오늘 창세기는 거듭 이렇게 말하지 않습니까?
“한 처음에 하느님께서 하늘과 땅을 창조하셨다.”
“그대로 되었다.”
모든 피조물은 하느님께서 창조하신 그대로 된 것들입니다.
그런데 인간만이 못된 놈들이 있습니다.
우리말에 아주 못된 짓을 하며 사람구실을 못하는 사람을 일컬어
<못된 놈>이라고 하는데 말하자면 사람이 되다가 만 것입니다.
이 말은 물론 태어날 때 조숙아로 태어난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태어난 뒤 제대로 성숙을 했어야 하는데 그 성숙이 멈춘 걸 말하는 거지요.
그러니까 몸뚱이는 어른으로 성장을 했는데
생각하는 것이나 마음 쓰는 것은 정상적인 어른으로 성장하지 못한 경우요,
윤리 도덕적이고 인격적으로 되어야 할 그 기준에 미달한 경우지요.
요즘은 거의 이 말을 들을 수 없지만 옛날 우리는
삼강오륜三綱五倫을 귀에 못이 박히게 들었습니다.
이것이 우리 인간이 되어야 할 유교적 기준이었는데
이 기준을 놓고 보면 요즘 사람들 중에는 못된 인간이 많고,
그래서 옛날 어른들은 아마 혀를 끌끌 차며 한탄을 하실 겁니다.
그러나 우리 창세기 신앙의 기준이랄까 영적인 기준으로 보면
하느님께서 우리인간을 창조하실 때 본래 뜻하신 대로 되지도 않고,
하지도 않는 그런 인간 그러니까 제멋대로 사는 사람을 말하는 걸 겁니다.
저는 하느님 본래의 뜻, 영적인 기준을 한 마디로 사랑하는 것이라고
좀 더 풀어서 얘기하면 경천애인敬天愛人,
곧 하느님을 경외하고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요,
여기애인如己愛人, 곧 남을 자기처럼 사랑하는 것이라고 하고 싶습니다.
그러니 사랑하지 않고, 사랑하려고도 하지 않는 사람은 다 못된 놈임을
깊이 성찰하고 반성하는 오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