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와 같이 하느님의 나라를 받아들이지 않는 자는
결코 그곳에 들어가지 못한다.”
오늘 집회서는 하느님께서 온갖 것을 주셨다는 것의 나열입니다.
그래서 주셨다는 말이 몇 번인가 세어보니 대략 12번이었고,
주신 것이 뭔지 나열해보니 1. 날수와 시간, 2. 땅 위 것들 다스릴 권한,
3, 지성, 4, 이성, 5, 분별력, 혀, 눈, 귀, 마음, 6, 선과 악을 보는 눈,
7, 경외심, 8, 지식, 9, 율법, 10, 깨우침, 11, 하느님 판결을 보는 눈,
12, 이웃에 대한 계명이고 이밖에도 우리 인간으로 하여금
이러하게 만드시고 저러하게 만드셨다는 표현도 많았습니다.
오늘 복음은 어린이와 같이 하느님 나라를 받아들여야
우리도 하느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니 독서와 복음 말씀을 연결시키면 하느님께서 주시는 것을
어린이처럼 받아들여야 하느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다는 말입니다.
전에도 한 번 말씀드린 바 있지만 하느님을 받아들여 내 안에
하느님을 모신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하느님께서 이미 내 안에 계시기에 그것으로 만족하여
다른 것을 찾을 필요도 없고, 하느님 계신 곳,
곧 하느님 나라를 찾아 헤맬 필요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하느님께서는 오늘 집회서 말씀처럼 모든 것을 주셨고
무엇보다도 모든 것을 주시는 당신을 주시는데도
우리는 하느님을 받아들여 우리 안에 모시지 않는데
우리 인간은 왜 하느님께서 주시는 것은 소유하면서
정작 그 모든 것을 주시는 하느님은 소유하지 않을까요?
그것은 우리가 어른이 되면서 다시 말해서 자아가 생기고
자기 것이 생기면서 사랑하지 않고 욕망하기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탕자의 비유를 보면 아들이 자기 몫을 챙깁니다.
아버지의 것이 다 네 것이니 아버지와 같이 지내자고 해도
내 것을 내 맘대로 하는 세상이 좋다며 아버지를 거부하고 떠납니다.
아버지를 사랑하여 아버지와 함께 있는 것보다
아버지로부터 내 몫을 챙겨 내 욕망대로 살 수 있는 삶이 더 좋은 것입니다.
그러나 어린아이는 어떻습니까?
어린아이는 아무리 장난감이 많고 친구가 많아도 엄마가 없으면 안 됩니다.
장난감이 많아도 또 장난감을 사달라고 욕심을 부리기도 하지만
그것은 엄마가 있을 때이고 장난감을 가지고 정신없이 놀다가도
엄마가 보이지 않으면 장난감 다 팽기치고 엄마를 찾아가는 것을 보면
장난감보다 엄마를 더 사랑하는 것이 분명합니다.
어린이와 같이 되는 것이 바로 이렇게 되는 것입니다.
그동안 욕망으로 더렵혀진 우리가 사랑을 회복하는 것이고
하느님께서 주신 것으로 대리만족하던 우리가
바로 하느님 자신으로 만족하게 되는 것입니다.
‘어린이와 같이 되지 않으면’을 여러 차원에서 묵상할 수 있지만 저는 오늘,
‘소유와 욕망의 우리가 사랑의 우리가 되지 않으면’으로 바꿔 묵상을 했는데,
그래서 여러분도 소유와 욕망의 우리가 사랑의 우리가 되지 않으면
하느님을 소유할 수도 하느님 나라에 들어갈 수도 없음을
다시 한 번 묵상하는 오늘이 되시기를 비는 오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