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세상의 빛이다.”
“내가 나 자신에 관하여 증언하여도 나의 증언은 유효하다.
내가 어디에서 왔고 어디로 가는지 알기 때문이다.”
오늘 주님께서는 당신이 세상의 빛이라고 하시는데
주님께서 빛이라는 것을 당신이 주장하시니 그런 주장은 유효치 않다고
바리사이들이 말하니 주님은 당신 자신의 증언만으로도 유효하다 하십니다.
그런데 이런 억지가 어디 있습니까?
누가 자기는 착하다고 하면 그 말이 맞다고 할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오히려 이상한 사람이라거나 교만하거나 위선적인 사람이라고 하지요.
다른 사람이 그 사람 착하다고 하고 자기는 아무 소리 말아야 하지요.
그래서 바리사이들은 이런 합리적인 생각과 판단을 하고
주님이 당신 자신에 대해 증언하는 것은 유효치 않다고 하는 것인데
사실 요한복음을 인간적으로만 해석하면 바리사이들이 합리적이고,
주님은 합리적이지 않고 억지가 많으며 그래서
많은 경우 요한복음의 말씀들은 그때 바리사이에게와 마찬가지로 지금의
우리에게도 이해가 잘 안 되고, 듣기 거북하며, 짜증이 나게 하기도 합니다.
이런 면에서 당신이 세상의 빛이라는 말씀도 이해하기 힘든 것 중 하나지요.
당신이 진정 빛이라면 당신이 말씀치 않아도 누구나 다 빛인 줄 압니다.
등불이 어둠속에서 비치고 있는데 등불인 줄 몰라볼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그러니까 주님은 당신이 세상의 빛이라고 하시지만 바리사이나 사람들은
그리 생각지 않고 오히려 세상을 어둡게 하고 어지럽히는 존재로 본 겁니다.
세상 기준으로 보면 세상을 어지럽히는 존재인데
주님은 하느님 나라 기준으로 당신을 세상의 빛이라고 말씀하시니
세상 사람들에게는 그 말씀이 이해 안 되고 답답하고 거북하고 한 것입니다.
그러니까 요즘 같은 때 우리가 사는 세상 점점 나아질 거라고,
또는 이렇게 하면 이 세상을 사는 것이 좀 나아질 거라고 얘기해야
주님께서 세상의 빛이 되고 희망이 될 텐데 그런 얘기는 하지 않고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 걱정치 말라거나
썩어 없어질 양식을 얻으려 하지 말고 천상 양식을 얻으려 힘쓰라 하시니
이런 분이 어떻게 세상의 빛이 되겠습니까? 오히려 어둠이지.
그러므로 이 세상에서의 희망을 바라는 사람들에게 주님은
세상의 희망을 주는 빛이 아니라 세상의 어둠을 들추어내는 빛이십니다.
이런 뜻에서 오늘 독서는 다니엘 예언서의 수산나 얘기를 들려주는데
다니엘처럼 주님은 세상의 감춰진 죄를 들춰내는 빛이시라는 뜻이고,
요한복음은 주님이 세상의 죄를 들추어내실 뿐 아니라
더 나아가 그 죄를 없애시는 하느님의 어린양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주님께서는 이 세상에서의 출세와 성공을 선사하려 오신 분이 아니라
이 세상을 떠나 하늘로 오르는 차표를 선사하려 오신 분이십니다.
그래서 주님을 오병이어의 기적을 통해 오천 명을 배불리신
인자하신 분으로 소개하는 공관복음과 달리 요한복음의 주님은
같은 기적 하신 뒤 사람들이 당신을 억지로 왕으로 세우려하자
도망치신 다음 그런 썩어 없어질 빵을 먹으려하지 말고
영원히 살게 하는 천상 빵을 먹으라 하시며
당신의 살과 피를 그 빵으로 주시는 분으로 소개됩니다.
이런 주님이 답답한 것인지 그 말귀를 못 알아듣는 우리가 답답한 것인지,
이런 주님이 어둠인지 주님이 빛이심을 알아보지 못하는 우리가 어둠인지
돌아보게 되는 오늘입니다.
좋은 말과 듣기 좋은 말을 주로 하던 제가
자신을 돌아보게 되는 말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