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러운 사람들이 있습니다.
시선에서 자유로운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제가 부러워하는 사람들은
부끄러움을 상실하고 뻔뻔하기에 자유로운 사람들은 아닙니다.
적어도 T.V에 나와서 자선을 행하는 그런 사람들은 아닙니다.
자기 응시를 놓지 않는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자기 약함을 늘 바라보면서
사람들의 과도한 시선에서는 자신을 보호합니다.
그러나 이들은 또한 하느님 응시를 놓지 않는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하느님이 자기에게 준 정체성과 사명을 늘 바라보면서
하느님의 눈길을 늘 의식합니다.
그러니 결코 나대지 않지만
필요한 경우 무엇을 감추지도 자신을 숨기지도 않습니다.
오늘 복음의 예수님이 적절히 그러하신 것 같습니다.
괜히 자신을 드러내고 싶지 않으시고
사람들의 입방아에 오르고 싶지 않으시지만
하느님을 드러내고
당신의 정체를 알려야 할 때가 오자
담대하게 아버지와 당신을 드러내십니다.
“나는 나 스스로 온 것이 아니다.
나를 보내신 분은 참되신데 너희는 그분을 알지 못한다.
나는 그분을 안다.
내가 그분에게서 왔고, 그분께서 나를 보내셨기 때문이다.”
우리도 이러 해야 할 하느님의 자녀들입니다.
시선에서 자유로운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제가 부러워하는 사람들은
부끄러움을 상실하고 뻔뻔하기에 자유로운 사람들은 아닙니다.
적어도 T.V에 나와서 자선을 행하는 그런 사람들은 아닙니다.
자기 응시를 놓지 않는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자기 약함을 늘 바라보면서
사람들의 과도한 시선에서는 자신을 보호합니다.
그러나 이들은 또한 하느님 응시를 놓지 않는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하느님이 자기에게 준 정체성과 사명을 늘 바라보면서
하느님의 눈길을 늘 의식합니다.
그러니 결코 나대지 않지만
필요한 경우 무엇을 감추지도 자신을 숨기지도 않습니다.
오늘 복음의 예수님이 적절히 그러하신 것 같습니다.
괜히 자신을 드러내고 싶지 않으시고
사람들의 입방아에 오르고 싶지 않으시지만
하느님을 드러내고
당신의 정체를 알려야 할 때가 오자
담대하게 아버지와 당신을 드러내십니다.
“나는 나 스스로 온 것이 아니다.
나를 보내신 분은 참되신데 너희는 그분을 알지 못한다.
나는 그분을 안다.
내가 그분에게서 왔고, 그분께서 나를 보내셨기 때문이다.”
우리도 이러 해야 할 하느님의 자녀들입니다.
사랑이신 하느님을 알수 있습니다.
하느님의 눈길을 늘 의식 합니다."
주신 말씀 감사드립니다,
나를 올바로 바라보고 응시해야
하느님의 사랑을 알고 깨달아
그 사랑을 이웃에게 드릴수 있습니다.
이러한 모습이 겸손한 삶이 아닐까 생각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