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께서 아브라함을 시험해 보시려고 ‘아브라함아’하고 부르셨다.”
오늘 창세기의 얘기는 시험에 대해 깊은 신앙적 성찰을 하게 합니다.
오늘 창세기의 하느님은 아브라함의 믿음을 시험하기 위해
백세가 되어서야 얻은 외아들 이사악을 바치라고 하십니다.
그런데 시험이니까 망정이지 정말로 이사악의 봉헌을 원하신 거라면
어떻게 되는 것입니까? 그런 하느님을 믿을 수 있겠습니까?
그런 하느님이 정말 하느님이란 말입니까?
하느님은 결핍이 없으시니 당신의 결핍을 채우기 위해
인간의 제물과 봉헌이 필요하지 않은 분이시지요.
그러니 인간의 봉헌을 원하신다고 해도 그것은 당신이 아니라
우리를 위해서고 우리의 봉헌이 우리의 유익이 되기 때문이겠지요.
그러나 제 생각에 우리에게 닥치는 시련의 이유는 여럿입니다.
하느님에 의한 것이 있고 인간에 의한 것이 있으며,
하느님에 의한 것에는 사랑으로 주시는 것과 벌로 주시는 것이 있으며,
인간에 의한 것도 나의 탓에 의한 것과 너의 탓에 의한 것이 있습니다.
그러니 고통과 시련의 이유를 우리가 잘 식별하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태평양 전쟁과 유대인 학살은 순전히 일본과 히틀러의 죄에 의한 것인데
그것을 마치 하느님께서 주셨거나 허락하신 거라고 해서는 안 될 것이고,
인간으로 인한 것도 인간의 죄로 인한 것과 잘못에 의한 것이 있는데
잘못에 의한 것을 죄로 인한 거라며 과하게 죄책해서는 안 되며,
잘못도 내 잘못 때문인데 네 잘못 때문이라며 남 탓을 해서는 안 되지요.
그러나 뭐니, 뭐니 해도 하느님께서 주신 것을 식별하는 것이 어렵습니다.
하느님께서 주시거나 허락하신 고통과 시련이
순전히 하느님 사랑으로 주신 건지 인간 죄에 대한 벌로 주신 건지 정확히
식별하는 것이 쉽지 않고 순전히 하느님 사랑으로 주신 것일지라도
그것이 시험용인지 단련용인지 정확히 식별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런데 그럴지라도 우리는 식별을 정확히 잘 해야 합니다.
왜냐면 우리에게 어려운 것은 식별보다도 수용이 더 어렵기 때문이고,
식별을 잘 해야 그나마 받아들이는 것이 조금 수월해지기 때문입니다.
사실 고통이나 시련은 순전히 사랑으로 주신 거라도 수용키 어렵지요.
왜냐면 아무리 약이어도 우리 인간은 쓴 것보다 단 것을 원하기 때문이고,
무엇보다 미성숙하면 할수록 쓴 것이 사랑이라는 것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제가 청원장을 할 때 오늘 하느님께서 아브라함을 시험하시듯
한 청원자를 시험하였는데 그 시험을 통해 그가 어느 정도 성숙하고,
어떤 수용의 자세와 순종의 자세를 갖췄는지 알기 위해서였습니다.
집안에 중요한 일이 있어 그 형제가 허락을 청했을 때 저는 보내주기로
이미 마음먹고 있었음에도 집에 가는 대신 편지를 하라고 했지요.
그것을 그 형제는 그때는 말할 것도 없고 나중에도 이해하지 못했고,
이해하지 못하니 받아들이기 힘들었고 그래서 억지로 받아들였습니다.
우선은 자신이 시험 당하는 것 자체를 자존심 때문에 받아들이기 힘들었고
그 시험이 사랑이라는 것은 이해가 안 되니 더 받아들이기 힘들어했지요.
우리 인간의 시험 중에는 사랑이 아닌 시험이 있을 수 있습니다.
면접시험의 경우에는 사랑이 하나도 없고 오로지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입사시켜야 할 사람인지 아닌지 식별키 위한 시험이 있을 뿐입니다.
그러나 시험 중에는 사랑의 시험도 있고 하느님의 시험은 더 그렇습니다.
고통과 시련이 식별을 위한 시험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도 오늘 아브라함의
경우처럼 믿음과 순종의 사랑이 성장하도록 단련키 위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믿음과 순종의 사랑은 고통과 시련이라는 시험을 통해서만 성장합니다.
이론은 강의를 통해, 열망은 기도를 통해 배우고 키울 수 있어도 성장은
고통과 시련을 통해서만 가능함을 아브라함을 통해 배우는 오늘 우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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