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7월 14일 연중 제 15주일
오늘 복음에서 주님께서는 착한 사마리아인 비유를 통해 나를 중심으로 이웃을 규정짓지 말고 고통당하는 사람에게 필요한 이웃이 되어 주라는 사고의 전환을 촉구하십니다.
율법 교사의 질문과 착한 사마리아 사람의 비유는 자연스럽게 연결됩니다. 영원한 생명을 얻기 위한 하느님 사랑과 이웃 사랑의 가르침은 유다교적 성격을 갖습니다. 이것은 예수의 가르침이 구약의 가르침과 일치하고 있다는 사실, 율법과의 연속성을 드러냅니다. 율법 교사의 질문은 결국 ‘하느님의 사람 범주에 속하는 이는 누구인가’라는 논의로 나아가게 되며,예수께서는 이에 대해 착한 사마리아 사람 비유를 통해 ‘이웃사랑을 실천하는 이’ 라고 답하십니다.
루카 복음사가는 제자들에 대한 행복 선언에 이어 율법 교사를 시험하려고 예수께 질문을 던지는 이야기를 전합니다. 이미 바리사이들과 율법 교사들이 예언자 요한을 거부하였기에,예수를 시험하고 자기 정당성을 드러내고 싶어하는 율법 교사의 태도를 볼 수 있습니다. 루카 복음사가는 마르코의 이중계명 논쟁을 착한 사마리아인의 비유와 결합시킴으로써 하느님 사랑과 이웃 사랑을 하나의 사건으로 통합합니다.
이 비유가 던지는 충격은 무엇보다 주인공이 유다인들에게 혐오의 대상인 사마리아인이라는 사실입니다. 예수 일행을 거부한 사마리아인들과 대조적으로,어떤 사마리아인은 예수처럼 연민으로 가진 것을 내놓고 강도 만난 이를 도와줍니다. 아마도 제의 규정과 개인적 안전을 위하여 다른 길로 피해 간 사제와 레위인들은 성전 종교를 대표하는 지도자로서,이스라엘 백성에게 소외된 사마리인의 처지와 대조를 이룹니다.
“가서 너도 그렇게 하여라”(10,37)는 결론으로,주님께서는 이웃이 종교적,사회적,지리적 관계안에서 정의되는 것이 아니라 조건 없는 연민과 나눔으로 형성되는 것임을 강조합니다.
제2독서는 콜로새 교회를 위협 하던 이설(異說)들에 대항하여 장엄한 그리스도 찬가를 제시합니다. 지혜와 지식의 온갖 보회를 지니고 계신 그리스도를 인격적으로 알지 않고는 하느님의 지혜를 이해할 수 없으니 그리스도를 떠나서 지식의 다른 근원을 찾으려는 것은 헛되다고 알려줍니다. 이 찬미가는 창조 사건에서 그리 스도가 차지하는 우주적 위치와,창조물을 구원하는 그분의 역할을 소개하는 심오하고 아름다운 그리스도론적 고백입니다. 찬가의 전반부(1,15-17)가 그리스도께서 창조 신비 안에서 차지하는 위치에 대한 주제를 담고 있다면, 찬가의 후반부(1,18-20)는 만물의 구원자로서 그리스도가 갖는 위치와 사명에 초점을 맞춥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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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그리스도 찬가를 통해서 복음에서 주님께서 말씀하시고자 하시는 사랑의 찬가를 우리의 일상안에서 체험할 수 있습니다. 인간은 하느님을 그 자체로는 인식할 수 없고 눈에 보이는 소외받고 굶주린 이들을 위한 이웃사랑을 통해서 하느님을 인식하고 만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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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그리스도 찬가를 통해서 복음에서 주님께서 말씀하시고자 하시는 사랑의 찬가를 우리의 일상안에서 체험할 수 있습니다. 인간은 하느님을 그 자체로는 인식할 수 없고 눈에 보이는 소외받고 굶주린 이들을 위한 이웃사랑을 통해서 하느님을 인식하고 만나게 됩니다.
우리가 일상 안에서 만나는 우리의 도움을 필요하는 이웃들에게 사랑의 나눔을 실천할 때 바로 살아있는 그리스도의 사랑의 찬가가 될 것입니다.
고 도미니코 of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