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에게 감동을 주는것은
시각보다는 청각이라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무서운 공포영화의 장면이나 슬프거나 감동적인 영화의 장면도
소리를 제거하면 사람에게 감동을 주지 못한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삶 안에서는 이와 다른 작용이 일어나는 듯 합니다.
말을 들음보다는 행동을 봄이 더 감동을 주는 때가 많습니다.
희생하자 봉사하자 사랑하자는 구호를 들음보다는
말없는 희생과 봉사와 사랑을 봄이 더욱 감동을 주고 교훈을 줍니다.
오늘 복음말씀에서의 예수님과 엠마오로 향하는 두 제자 사이에서도
이런 작용이 일어납니다.
예수님과 두 제자는 엠마오로 가는길에서 한참을 서로 이야기하였고
그 대화 후에 예수님께서는 성경전체에 걸쳐 당신에 관한 기록들을
제자들에게 설명하십니다.
그렇지만, 정작 두 제자에게 예수님을 알아보도록 한것은
예수님의 말씀을 들음이 아니었고,
빵을 떼어 주시는 예수님의 모습을 봄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가르치신 사랑의 새계명은
십자가 위에서 죽기까지 사랑하신 그 행위를 통해 알게되었고,
예수님께서 설명하신 하느님 나라는
부활과 승천의 행위를 통해 알게됩니다.
오늘하루, 말하기보다는 행동함으로 신앙을 살고 싶습니다.
시각보다는 청각이라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무서운 공포영화의 장면이나 슬프거나 감동적인 영화의 장면도
소리를 제거하면 사람에게 감동을 주지 못한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삶 안에서는 이와 다른 작용이 일어나는 듯 합니다.
말을 들음보다는 행동을 봄이 더 감동을 주는 때가 많습니다.
희생하자 봉사하자 사랑하자는 구호를 들음보다는
말없는 희생과 봉사와 사랑을 봄이 더욱 감동을 주고 교훈을 줍니다.
오늘 복음말씀에서의 예수님과 엠마오로 향하는 두 제자 사이에서도
이런 작용이 일어납니다.
예수님과 두 제자는 엠마오로 가는길에서 한참을 서로 이야기하였고
그 대화 후에 예수님께서는 성경전체에 걸쳐 당신에 관한 기록들을
제자들에게 설명하십니다.
그렇지만, 정작 두 제자에게 예수님을 알아보도록 한것은
예수님의 말씀을 들음이 아니었고,
빵을 떼어 주시는 예수님의 모습을 봄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가르치신 사랑의 새계명은
십자가 위에서 죽기까지 사랑하신 그 행위를 통해 알게되었고,
예수님께서 설명하신 하느님 나라는
부활과 승천의 행위를 통해 알게됩니다.
오늘하루, 말하기보다는 행동함으로 신앙을 살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