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은 포르치운쿨라 하면 어떤 것이 생각납니까?
전대사? 고백 성사? 성모 마리아? 행진?
오직 전대사만 생각나신다구요? 그렇다면
그것이 비록 우리 믿음 안에 있을지라도 어쩌면 영적인 욕심일 것입니다.
오직 행진만 생각나신다구요? 그렇다면
그것이 비록 좋은 체험일지라도 산티아고 순례와 크게 다를 게 없겠지요.
마찬가지로 고백 성사만 생각난다거나 성모 마리아만 생각난다면
이 축일의 전체적인 의미를 알고 지낸다고 할 수 없습니다.
그렇긴 하지만 어느 하나에 초점을 맞춰 축일의 의미를 새길 수는 있겠지요.
그래서 올해 저는 포르치운쿨라 전대사에 대해 묵상을 하고자 합니다.
말하자면 <올바른 전대사 받기>가 올해 묵상의 주제입니다.
그리고 올바른 전대사 받기란 열매만 쏙 따먹으려는 자세가 아니지요.
씨만 뿌려놓고 거름을 주지도 가꾸지도 않고 열매만 따먹고자 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죄와 잠벌까지 사함을 받으려면 먼저 진정한 뉘우침이 있어야 하고,
그런 다음 은혜로운 정화가 있어야 하는데 이것이 바로 고백성사입니다.
고백성사와 관련하여 제가 자주 범하는 잘못이 바로 성찰과 뉘우침이
부족한 상태에서 고백성사를 보는 것인데
성사의 사효성에 대한 믿음 때문입니다.
성사의 사효성에 대한 믿음이란 죄 사함을 받기 위한 은총의 상태에
내가 비록 있지 않더라도 성사는 그 자체로 효력이 있다는 믿음인데
이 믿음이 잘못된 것이 아님은 물론이고 훌륭하다고도 할 수 있지만
문제는 앞서 봤듯이 이것 때문에 성찰과 뉘우침에 소홀할 수 있다는 겁니다.
이는 마치 때밀이에게 내 몸의 정화를 맡기는 것과 같습니다.
이 경우 돈만 주면 때밀이가 알아서 나의 더러운 곳을 다 씻어주니
그리 해도 되지만 우리 영혼의 경우는 무슨 죄가 있는지 성찰이 부족하기에
무슨 죄가 사해졌는지도 모르고 그 은혜로움도 모를 수 있다는 것입니다.
내게 암 덩어리가 있는데 그것이 얼마나 치명적인지 알고 있는 사람이
모르고 있는 사람보다 그것이 제거됐을 때 더 고마워하지 않겠습니까?
그리고 그래야 암의 원인을 알기에 또 다시 그 암에 걸리지 않겠지요?
고백성사의 은혜는 죄 사함의 은혜뿐 아니라
내 죄가 사해졌다는 그 은총체험의 은혜와
다시는 죄를 짓지 않겠다는 결심의 은혜까지 있어야 합니다.
다음으로 우리는 사랑의 결심 없이 전대사만 받으려 해서도 안 될 것입니다.
전대사가 이기주의적이지 않고 더욱더 완전한 성사가 되기 위해서는
우리 안에서 사랑이 회복되어야 합니다.
왜냐면 우리의 죄라는 것이 따지고 보면 다 사랑치 않은 죄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사랑의 의지도 없고 결심도 없는 것은 마치 암 덩어리만 제거했지
아직 몸이 회복되지 않은 상태로 내버려두겠다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우리는 미움의 뿌리를 도려낼 뿐 아니라 사랑의 의지와 힘을 키워야 합니다.
미워하지 않는 것만으로 충분하지 않고 사랑해야 하며,
사랑하려고 할 뿐 아니라 실제로 사랑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모두 사랑해야 한다는 것이 사랑하는 것으로 열매를 맺는
오늘, 포르치운쿨라 축일들이 되시기를 바라고 빕니다.
http://www.ofmkorea.org/130992
17년 포르치운쿨라의 성 마리아 축일
(변명할 수 없는 그래서 인정할 수밖에 없는 진정성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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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총의 광합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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