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고 난 뒤 우리의 관계는 어떻게 되는가?
부부의 관계가 죽은 다음에도 이어지는가?
부자의 관계가 죽은 다음에도 이어지는가?
과거 어떤 관계였는지는 서로 알고 지낼까?
참으로 궁금합니다.
그래서 비록 예수님을 궁지에 처넣으려 던진 질문이지만
오늘 복음에서 사두가이들이 한 질문은
이런 우리의 궁금증을 대표합니다.
이에 대해 예수님께서는
“사람들이 죽은 이들 가운데서 다시 살아날 때에는,
장가드는 일도 시집가는 일도 없이
하늘의 천사와 같을 것이다”고 답하십니다.
그러면 천사와 같이 된다는 것은 무슨 뜻일까요?
지금의 우리는 인간적 관계성 안에서 자기 정체성을 지니지만
하느님 나라에서 다시 태어날 때는
이전의 관계성과 정체성은 해소되고
오직 하느님과의 관계성 안에서 새로 태어난다는 뜻이 아닐까요?
그래서 누구의 자녀였던 나는 이제 하느님의 자녀로 다시 태어나고
누구의 아내였던 나는
이제 그리스도의 정배(Sponsa Christi)로 다시 태어납니다.
사실 이것이 우리가 ‘지금 여기’에서부터 살고자 하는
하느님 나라의 정결입니다.
하느님 나라는 늘 ‘지금 여기’입니다.
‘옛날의 어디’는 이미 죽었습니다.
늘 ‘지금 여기’로 다시 태어나 새로운 관계를 살아갑니다.
그것도 늘 하느님 중심으로 새로운 관계를 살아갑니다.
모든 관계가 하느님 중심으로 새롭게 짜여지는 것입니다.
비록 이 세상에서 부부의 관계로 맺어지고
이 관계 안에서 부모와 자식의 관계가 맺어졌지만
이 관계는 이 세상에서의 관계일 뿐이고
이런 관계를 맺어주신 것도 하느님이시기에
우리는 이 세상에서부터
아들과 남편을 나 중심으로 소유해서는 안 되고
언제고 하느님께 돌려드리고자 함이 정결 서원입니다.
내 남편이기에 앞서 하느님의 자녀이고
내 아들이기에 앞서 하느님의 아들임을
우리는 믿고 그렇게 살아가는 것입니다.
부부의 관계가 죽은 다음에도 이어지는가?
부자의 관계가 죽은 다음에도 이어지는가?
과거 어떤 관계였는지는 서로 알고 지낼까?
참으로 궁금합니다.
그래서 비록 예수님을 궁지에 처넣으려 던진 질문이지만
오늘 복음에서 사두가이들이 한 질문은
이런 우리의 궁금증을 대표합니다.
이에 대해 예수님께서는
“사람들이 죽은 이들 가운데서 다시 살아날 때에는,
장가드는 일도 시집가는 일도 없이
하늘의 천사와 같을 것이다”고 답하십니다.
그러면 천사와 같이 된다는 것은 무슨 뜻일까요?
지금의 우리는 인간적 관계성 안에서 자기 정체성을 지니지만
하느님 나라에서 다시 태어날 때는
이전의 관계성과 정체성은 해소되고
오직 하느님과의 관계성 안에서 새로 태어난다는 뜻이 아닐까요?
그래서 누구의 자녀였던 나는 이제 하느님의 자녀로 다시 태어나고
누구의 아내였던 나는
이제 그리스도의 정배(Sponsa Christi)로 다시 태어납니다.
사실 이것이 우리가 ‘지금 여기’에서부터 살고자 하는
하느님 나라의 정결입니다.
하느님 나라는 늘 ‘지금 여기’입니다.
‘옛날의 어디’는 이미 죽었습니다.
늘 ‘지금 여기’로 다시 태어나 새로운 관계를 살아갑니다.
그것도 늘 하느님 중심으로 새로운 관계를 살아갑니다.
모든 관계가 하느님 중심으로 새롭게 짜여지는 것입니다.
비록 이 세상에서 부부의 관계로 맺어지고
이 관계 안에서 부모와 자식의 관계가 맺어졌지만
이 관계는 이 세상에서의 관계일 뿐이고
이런 관계를 맺어주신 것도 하느님이시기에
우리는 이 세상에서부터
아들과 남편을 나 중심으로 소유해서는 안 되고
언제고 하느님께 돌려드리고자 함이 정결 서원입니다.
내 남편이기에 앞서 하느님의 자녀이고
내 아들이기에 앞서 하느님의 아들임을
우리는 믿고 그렇게 살아가는 것입니다.
어느새 이 정결서원을 까마득히 잊고
나의 것이라 착각한 소유를 관리하느라 허리가 휘고 맙니다.
아하, 이 나약함을 깨우치는 시간 갖게 하소서.
이 세상안에서 하느님의 일을 알게 하시며
더이상 당신을 슬프게 해드리지 않도록
온전한 믿음을 더하여 주십시오
언젠가는 떠날 것을 미리 염두에 두고
사랑하는 사람과의 심리적인 거리를
적당히 두고 살 필요가 있지만
사랑하는 사람과의 관계에서 심리적인 거리를
어디까지 어떻게 둘 것인가는
참으로 어려운 문제가 아닐 수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래서 여기서부터 떠날 때를 준비하며
그것이 때론 차가움으로 다가오기도 하지만
모든 것에 집착을 버리고 구도자의 삶을 살아가는
분들에게 제가 가끔씩 참으로 사람도 아니다(죄송해요, 이렇게 표현해서)
그래서 하느님께서는 백배의 상을 마련하고 계신지도 모른다고,
떠날 것은 분명한 사실이기에
여기를 살면서도
늘상 떠날 것을 염두에 두고 살아야 함을
다시 한 번 되새겨 보는 아침입니다.
고맙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하느님 중심의 삶이 아니고 내틀,
내 방식대로 가두려는데 문제가 발생하곤 하지요.
아들 며느리 딸 사위 남편까지 띄어보내고 하느님께 정결서원을 해야 합니다....
모든 이웃이 하느님께서 보내주신 가족임을 알고 믿고 살아내야 하겠지요....
20년전 명동성당에서 성서공부 시간에 당시 60이 넘으신 형님께서
지금 같이 이런이야기를 하셨지요 가족 모두를 띄어보내고
이제 오로지 편안 맘으로 매이지 말고 주님만 믿고
살아가야 한다는데 어리등절 했습니다.
이제 저역시 그렇게 하겠노라고 소유가 아니고
하느님께 돌려드린다고....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