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에 재속 프란치스코회 영적 보조자로 있을 때입니다.
남자 형제들의 단합과 분발을 위해 바닷가로 피정을 갔습니다.
돌아오는 길에 바닷가에서 회와 함께 한 잔 하게 되었습니다.
썰물과 밀물이 있는 서해안에서
상당히 낭만적이고 시적 감흥이 있으신 형제님께서
건배를 제의하셨습니다.
“물 들어 올 때 노 젓자!”
그때 그 제의의 뜻은 제가 대전을 떠나면 소용없으니
제가 대전에 있는 동안 같이 한 번 잘 해보자는 뜻이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다른 뜻에서 이 말이 너무 마음에 들었습니다.
무엇이든지 때가 있습니다.
물 빠지고 나서 노 열심히 저어봤자 소용이 없지요.
그래서 대전 지구 총회를 하며 앞으로 3년의 구호로
“물 들어 올 때 노 젓자!”를 정했습니다.
때를 놓치면 소용없으니 하려는 의지가 있을 때
앞으로 3년 한 번 열심히 해보자는 뜻이었고,
분산된 힘을 모아 효율성을 극대화하자는 뜻이었습니다.
그때 이후 저는 주변의 분들에게 농담반 진담반
‘쓸모 있을 때 저를 써먹으세요.’라고 얘기합니다.
이 말은 자신에게 득이 될 기회를 놓치지 말라고
그분들에게 하는 말이기도 하지만 사실은 저에게 하는 말입니다.
사람들이 저를 필요로 하는 것도 얼마 가지 않을 것입니다.
얼마 안 가서 저는 필요한 존재가 아니라
불필요한 존재를 넘어서 짐이 되는 존재에 불과할 것입니다.
늙어 냄새 난다고 싫어들 할 것이고
새로운 제품에 밀려 쓸모도 없고 처리할 수 없는 골동품처럼
이내 거추장스러운 존재가 될 것입니다.
그러니 지금 조금 바쁘고 힘들어도
사람들이 저를 필요로 할 때 남김없이 다 드리자는 뜻입니다.
반대의 경우도 있습니다.
줄 때와 줄 수 있을 때가 있다면
받을 때와 받을 수 있을 때도 있습니다.
그것은 마치 배움과 같습니다.
늙으면 못 배웁니다.
나이 먹어 미국에 갔더니 젊은 사람들보다 더 노력을 많이 했는데도
말이 늘지 않아 저의 영어는 요 모양 요 꼴입니다.
그래서 저는 더 일찍 미국에 갔으면 하는 생각도 하지만
그래봤자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더 일찍, 20대 때 유학을 가라고 했을 때
저는 갈 필요성도 의지도 없었습니다.
지나고 보니 20대 때가 제가 영어를 배울 수 있는 최선의 때였는데
그때는 그것이 저에게 아무런 의미도 그래서 선도 아니었던 것입니다.
그래도 더 나중에 배우지 않고 그때 배웠으니 얼마나 다행입니까?
나중보다는 지금이 빠르고
늦었다고 생각하는 때가 가장 빠르다는 말이 있지요.
그러니 지금이 바로 은혜로운 때입니다.
지금 이 사람이 하느님께서 저에게 주신 은총이고
지금 이 기회가 하느님께서 저에게 주신 은총이고
지금 이 사건이 하느님께서 저에게 주신 은총입니다.
시간이 지난 먼 훗날 지금을 생각하며
“그 때 그것이 은총이었다.”고 말할 수 있어도 은총이지만
지금, “지금 이것이 은총이다.”고 말할 수 있음이 더 은총입니다.
“형제 여러분, 하느님의 은총을 헛되이 받는 일이 없게 하십시오.
하느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은혜로운 때에 내가 너의 말을 듣고,
구원의 날에 내가 너를 도와주었다.’
지금이 바로 매우 은혜로운 때입니다.
지금이 바로 구원의 날입니다.”
남자 형제들의 단합과 분발을 위해 바닷가로 피정을 갔습니다.
돌아오는 길에 바닷가에서 회와 함께 한 잔 하게 되었습니다.
썰물과 밀물이 있는 서해안에서
상당히 낭만적이고 시적 감흥이 있으신 형제님께서
건배를 제의하셨습니다.
“물 들어 올 때 노 젓자!”
그때 그 제의의 뜻은 제가 대전을 떠나면 소용없으니
제가 대전에 있는 동안 같이 한 번 잘 해보자는 뜻이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다른 뜻에서 이 말이 너무 마음에 들었습니다.
무엇이든지 때가 있습니다.
물 빠지고 나서 노 열심히 저어봤자 소용이 없지요.
그래서 대전 지구 총회를 하며 앞으로 3년의 구호로
“물 들어 올 때 노 젓자!”를 정했습니다.
때를 놓치면 소용없으니 하려는 의지가 있을 때
앞으로 3년 한 번 열심히 해보자는 뜻이었고,
분산된 힘을 모아 효율성을 극대화하자는 뜻이었습니다.
그때 이후 저는 주변의 분들에게 농담반 진담반
‘쓸모 있을 때 저를 써먹으세요.’라고 얘기합니다.
이 말은 자신에게 득이 될 기회를 놓치지 말라고
그분들에게 하는 말이기도 하지만 사실은 저에게 하는 말입니다.
사람들이 저를 필요로 하는 것도 얼마 가지 않을 것입니다.
얼마 안 가서 저는 필요한 존재가 아니라
불필요한 존재를 넘어서 짐이 되는 존재에 불과할 것입니다.
늙어 냄새 난다고 싫어들 할 것이고
새로운 제품에 밀려 쓸모도 없고 처리할 수 없는 골동품처럼
이내 거추장스러운 존재가 될 것입니다.
그러니 지금 조금 바쁘고 힘들어도
사람들이 저를 필요로 할 때 남김없이 다 드리자는 뜻입니다.
반대의 경우도 있습니다.
줄 때와 줄 수 있을 때가 있다면
받을 때와 받을 수 있을 때도 있습니다.
그것은 마치 배움과 같습니다.
늙으면 못 배웁니다.
나이 먹어 미국에 갔더니 젊은 사람들보다 더 노력을 많이 했는데도
말이 늘지 않아 저의 영어는 요 모양 요 꼴입니다.
그래서 저는 더 일찍 미국에 갔으면 하는 생각도 하지만
그래봤자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더 일찍, 20대 때 유학을 가라고 했을 때
저는 갈 필요성도 의지도 없었습니다.
지나고 보니 20대 때가 제가 영어를 배울 수 있는 최선의 때였는데
그때는 그것이 저에게 아무런 의미도 그래서 선도 아니었던 것입니다.
그래도 더 나중에 배우지 않고 그때 배웠으니 얼마나 다행입니까?
나중보다는 지금이 빠르고
늦었다고 생각하는 때가 가장 빠르다는 말이 있지요.
그러니 지금이 바로 은혜로운 때입니다.
지금 이 사람이 하느님께서 저에게 주신 은총이고
지금 이 기회가 하느님께서 저에게 주신 은총이고
지금 이 사건이 하느님께서 저에게 주신 은총입니다.
시간이 지난 먼 훗날 지금을 생각하며
“그 때 그것이 은총이었다.”고 말할 수 있어도 은총이지만
지금, “지금 이것이 은총이다.”고 말할 수 있음이 더 은총입니다.
“형제 여러분, 하느님의 은총을 헛되이 받는 일이 없게 하십시오.
하느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은혜로운 때에 내가 너의 말을 듣고,
구원의 날에 내가 너를 도와주었다.’
지금이 바로 매우 은혜로운 때입니다.
지금이 바로 구원의 날입니다.”
가슴에 담습니다.
오늘 하루, 그분의 은총으로 그 은총을 깨닫게 되길...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