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흔두 제자가 기뻐하며 돌아와 말하였다.”
“예수님께서 성령 안에서 즐거워하며 말씀하셨다.”
오늘 복음은 모처럼 제자들과 예수님 모두 기뻐하시는 내용이며
우리의 기쁨이 어떤 것이어야 하는지 가르침을 주시는 내용입니다.
어제 모 수녀원에 가 젊은수녀님들을 대상으로
수도생활에 대한 강의를 하루 종일 하였습니다.
세상의 변화와 함께 우리의 수도생활도 바뀌어야 하는데
기쁘고 건강한 수도생활로 바뀌어야 한다는 내용이었고
기쁘고 건강한 수도생활의 요체는 우리의 정신이 바뀌어
하느님의 영을 영접하는 그런 생활이어야 한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주제를 이렇게 잡은 것은 프란치스코 교황이 <복음의 기쁨>에서
지적하였듯이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기쁨이나 열정이 없이 살면서
불안과 분노와 두려움 같은 것들로 가득차 있는데 수도자들도
이런 면에서 비슷하기에 미래의 주역인 수도자들 자신이 건강하고
기쁘게 살뿐 아니라 세상 사람들에게도 복음의 기쁨을 선사하는
그런 사람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컸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오늘 복음이 바로 예수님과 제자들이 기뻐했다는 얘기를 전하는데
아시다시피 이것은 복음 전체에서 볼 때
이곳 외에 다른 곳에서는 볼 수 없는 장면입니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선출되고서 <복음의 기쁨>이는 회칙과
<기뻐하고 즐거워하여라>는 권고를 냈을 뿐 아니라
자주 웃는 얼굴을 보이는 것이 많은 사람들에게 신선함을 선사했는데
그것은 이전 교황들이 근엄한 모습만 보여주고 좀처럼 웃는 얼굴을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었는데 사실 예수님의 이미지도 마찬가지였지요.
그런데 교황의 말씀대로 우리가 복음을 제대로 산다면 기쁨이 있어야 하고
실제로 복음을 기쁘게 사는 사람들이 우리 가운데도 있는데 하물며
복음의 주인공이신 주님과 제자들이 기쁘지 않았을 리가 없을 겁니다.
그런데 오늘 복음을 보면 기쁨에도 등급이랄까 차원이 있습니다.
제자들의 기쁨 차원과 예수님의 기쁨 차원이라고 할 수 있을 겁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의 이름으로 마귀를 쫓아낸 기쁨을 토로합니다.
이것은 루카복음의 이전 장,곧 9장에서 열두 제자가 뽑히고
마귀추방의 사명을 받았음에도 그 사명에 실패한 뒤의 얘깁니다.
그러니까 9장에서는 예수님께서 타볼산에 베드로,야고보,요한 세 사도만
데리고 가셔서 그들 앞에서 변모의 모습을 보이시고 내려오셨고,
남아있던 다른 제자들은 마귀추방에 실패하였는데 10장에서는
다른 일흔 두 제자가 파견되고,이들은 마귀추방에 성공한 겁니다.
그러니 일흔 두 제자가 얼마나 기뻤겠습니까?
이것은 실패를 거듭하다 드디어 성공했다는 성취의 기쁨일 수도 있고,
열두 제자가 못한 것을 해냈다는 우월감적인 기쁨일 수도 있습니다.
혹 이런 기쁨이 아니라 마귀를 쫓아냈다는 성취의 기쁨일 수도 있습니다.
악령을 쫓아냈으니 어떤 영적인 힘을 성취한 기쁨일 수도 있을 겁니다.
아마 저라도 그런 힘을 지니게 되면 기쁘고 어쩌면 우쭐할 겁니다.
그런데 주님께서는 영 안에서 기뻐하시며 경고성 충고를 하십니다.
마귀추방을 할 수 있게 된 것을 기뻐하지 말고
하늘나라에 들어가게 되는 것을 기뻐하라고 말입니다.
영적인 힘이든 뭐든 이 세상에서 성취하는 것을 기뻐하지 말고
하늘나라를 성취하는 것을 기뻐하라는 말씀인 것입니다.
우리로 치면 이 세상에서 손주얻은 것을 기뻐하지 말라고 할 수 없고
그런 기쁨이 주어졌을 때 하느님께 감사드려야겠지만
그런 기쁨에만 머물지 말고 더 높은 차원의 기쁨,
곧 하늘나라 성취를 더 기쁨 삼으라는 오늘 주님의 가르침입니다.
(가슴앓이뿐 아니라 몸앓이까지 해야.)
http://www.ofmkorea.org/154148
17년 연중 제26주간 토요일
(우리가 기뻐해야 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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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기쁨은 어떤 기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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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의 기쁨과 제자들의 기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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